독자여론부. 기자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몸담고 있는 부서다. 정치부, 사회부, 경제부 등과 달리 이름만 듣고 바로 부서의 특성을 알기 어려운 까닭에 어떤 일을 하는지 묻는 분들이 있다. 그럴 때면 ‘인터뷰를 주로 하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개하는 부서’라고 말한다.

지난 석 달간 가장 많이 체감한 것은 “그래도 세상은 참 살 만하다”였다. 연말 연초라는 특수성도 있지만,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부서 메일(opinion@kookje.co.kr)로 각계각층의 미담 사례가 물밀 듯이 쏟아졌다.

상당수는 기관이나 단체 등에서 연례행사처럼 하는 김치담그기, 연탄배달, 라면이나 성금 전달 등이었지만 개개인의 아름다운 나눔 활동도 예상외로 많았다.

최근 몸도 제대로 가누기 힘든 50대 1급 장애인 우주연 씨가 부산대학교 발전기금으로 200만 원을 전달(본지 지난 9일 자 29면 보도)한 소식을 전한 바 있다. 그는 20년 전 부산대 학생들이 운영하는 장애인 야학에서 뒤늦게 배움에 눈을 떴다며, 그때의 고마움을 꼭 갚고 싶었다고 했다. 올 1월부터 매월 2만 원을 내겠다는 말과 사후 시신 기증도 약속했다. 별다른 수입원이 없던 그는 수년 전 사고를 당해 받은 귀한 보상금을 내놓은 것이다.

얼마 전 사회복지재단 관계자들에게 전해 들은 키다리 아저씨들은 더욱 가슴을 따뜻하게 했다. 지난해 서울 소재 대학에 들어간 한 학생은 동생과 단둘이 살고 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우울증 등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의지할 데 없이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할 때 이 학생은 재단이 찾은 후원자와 인연을 맺었다. 후원자는 부모처럼 성심성의껏 그들을 돌보았고 대학 등록금은 물론, 서울에서 지낼 전셋집과 생활비 등을 지원해 줬다.

대학 입학 후 학생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후원자는 “너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공부하고, 앞으로 어떻게 잘살 수 있을지만 생각해라. 네 아픔을 모두 잊을 수 있을 만큼 다 지원해 주겠다”고 어깨를 두드려줬다.

삶의 낭떠러지에서 위태위태하게 하루를 견디던 또 다른 가족도 후원자 덕분에 새 삶을 얻었다. 대기업에서 퇴사한 후 택배 일을 하던 중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아버지, 그런 남편에게 미안한 어머니는 10년째 요양병원에서 병간호를 하고 있다. 지극정성으로 아버지를 돌보는 어머니와 함께 고등학생, 중학생 자녀는 병원을 집 삼아 살고 있다. 남매만 주로 지내는 집은 전기가 끊긴 지 수년, 밀린 전기료만 300만 원대였다. 이들은 휴대전화 불빛을 전등 삼아 휴대용 버너에 라면을 끓여 먹고 생활해 왔다. 첫 만남에서 “뭘 갖고 싶냐”고 묻는 후원자에게 여동생은 “죄송한데 오빠 운동화 하나만 사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신발에 구멍이 났지만 어머니에게 사 달라고 말하지 못한 채 학교 휴지통에 버려진 운동화를 주워서 신고 다니다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고 있는 오빠가 너무 가엽다는 딱한 사연을 털어놓았다.

전기료와 생활비 등을 후원자로부터 지원받게 된 어머니는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다. “남편 사고 후 10년 동안 컴컴한 터널 속에 있었습니다.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우리 세 식구 두 손 꼭 잡고 두 발로 꼭 버티고 있다면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하고 버텼는데, 이렇게 희망을 주셨네요.(중략) 다시 파란 하늘을 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무원으로 일하며 25년 이상 어려운 청소년을 돕는 이도 있다. 부산경찰청 이득찬 행정관은 더 많은 학생을 후원하기 위해 지난해 소년·소녀가장돕기 10주년 음악회(본지 지난해 11월 17일 자 26면 보도)를 열었다.

음악회 당일 아침, ‘행사 잘 치르시라’는 기자의 카카오톡에 대한 답장으로 보내온 사진은 전날 저녁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500명이 넘는 관람객이 먹을 어묵탕을 만드느라 드럼통을 몇 개씩 번갈아 가며 분주히 육수를 우려내 베란다에 내놓는 아내의 뒷모습이었다. 오랜 세월 그가 남을 도울 수 있었던 것은 곁에서 묵묵히 자신을 돕는 아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내가 남을 돕는다고 생각했는데, 나눔을 실천하니 오히려 내가 더 행복해지더라’는 사람들. 올해도 그들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사랑으로 지면을 가득 채우고 싶다.

독자여론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