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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건 칼럼] 평창 그 너머로 가는 길

남북관계 모처럼 훈풍…한반도 운전석론 시험대

대화마당에 찬물 끼얹는 우리 내부의 분열로 호기 놓치는 일은 없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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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숨가쁜 새해 벽두다. 김정은의 신년사로 촉발된 남북관계의 급속한 해빙 무드가 마침내 오늘 고위급회담으로까지 이어졌다. 2015년 12월 이후 2년1개월 만에 대화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평창동계올림픽이 가져다 준 선물이다. 하지만 세계의 관심은 온통 평창 이후에 쏠려 있다. 평창을 위한 만남이 한반도의 평화로 이어질지, 아니면 허망했던 과거의 전철을 밟을지 여부다. 마침내 새로운 주사위는 던져졌다. 동시에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석론도 시험대에 올랐다.

결과야 두고봐야 하겠지만 새해 벽두의 변화는 놀랍다. 이토록 순식간에 진행될 일을 두고 지난해 그리 난리를 떨었는가 싶기도 하다. 선제타격론에다 핵무장론까지, 금방이라도 전쟁이 날 듯하던 한반도에 갑작스레 불어오는 훈풍이 생경하기까지 하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훈풍은 지난해 7월 문 대통령이 독일에서 남북대화 재개와 이산가족 상봉 등 4대 과제를 밝힌 베를린 구상의 연장 선상에 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북한은 이를 ‘잠꼬대 같은 궤변’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국내 보수세력으로부터의 비난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어쨌든 대화는 순식간에 다가왔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변화에 불안감이 들 만도 하다. 김정은의 의도가 과연 무엇인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도 당연하다. 상대를 들어다놨다 하는 북한의 그간 협상 행태로 미뤄 저의와 복심이 없을 리 만무한 것이다. 당장 한미 동맹을 이간시키려는 의도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는 우려가 터져나온다. 북한 핵 개발에 시간만 벌어줄 뿐이라는 경계론도 있다. 지나친 속도전은 이 같은 계략에 말려드는 것이라는 목소리도 크다.

문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이런 고민이 묻어난다. 그는 북한이 고위급회담을 수락한 뒤 “과거처럼 유약하게 대화만 추구하지 않겠다”고 했다. 또 “(북한에 대한) 성급한 판단이나 기대는 금물”이라고도 했다. 국내외 일각의 부정적인 시선을 의식한 발언이다. 한반도 운전석에 오른 당사자로서 북한은 물론 미국, 그리고 국내 보수 세력 등 모두를 아울러야 하는 극도로 조심스러운 그의 입장이 느껴진다. 힘겹게 찾아온 천금 같은 기회를 또다시 놓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기도 하겠다.
그럼에도 어찌보면 문 대통령이 진정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유약하게 대화만 추구하지 않겠다면서 “북한 문제가 물론 어렵지만 더 어려운 것은 내부 의견의 분열”이라고 언급한 부분이다. 지난해 베를린 구상을 밝힌 이후 일관된 대화 기조에 대해 일부로부터 거센 비난에 시달려온 터다. 그렇게 내주고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는데 또다시 종국에는 북한에 당하고 말 것이라는 비관론이다. 어떤 대화에도 결코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북핵 대화 무용론이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이 맞닥뜨리고 있는 상대는 단지 북한만이 아니다. 국내에서 끊임없이 발목을 잡고 있는 대화 무용론자도 그에 못지 않다. 당장 자유한국당은 영 마뜩잖은 표정이다. 일단 펼쳐진 남북대화의 마당을 대놓고 비난하진 않더라도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한미 동맹에 조금이라도 금이 갈까 노심초사다. “우리들 잔치를 위해 세계 평화를 소홀히 하는 누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이상한 논리까지 들이대고 있다. 겉으로는 북한의 한미 동맹 이간질을 우려하지만 속으로는 남북대화에 대한 여론을 이간질하려는 의도로 비친다. 문 대통령이 북한 문제보다 더 어렵다는 내부 분열이 바로 이런 것이겠다.

지나친 낙관론이 금물임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해도 일단 펼쳐진 대화 마당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의도는 불순하다. 북한이 설혹 또 다른 저의와 복심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대화 자체를 폄하하는 지나친 비관론도 경계해야 한다. 더구나 지금은 과거와는 또 다른 상황이다. 북한이 핵 무력 완성을 천명하는 등 한반도 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고조돼 있다. 대화 무용론은 북한이 절대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화는 필요하다. 만나봐야 북한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짐작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6개월 전 문 대통령이 밝힌 베를린 구상은 여기저기서 난타당했지만 현실이 됐다. 그러나 지금의 훈풍이 언제 칼바람으로 돌변할지 알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여지껏 운전석에 앉기까지 보다 더 험난한 길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셈이다. 그 과정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운전대를 흔들어대는 일이 계속돼서는 곤란하다. 평창을 넘어 한반도 평화를 향한 여정은 이제 막 시동을 걸었을 뿐이다. 그 길을 가로막는 게 협상 당사자인 북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처럼 찾아온 호기에 사사건건 딴지를 걸며 협상을 무위로 끝나게 할 빌미를 우리 스스로 제공하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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