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최강자를 가리는 월드시리즈 도중 한 선수의 돼먹지 못한 행동이 구설에 올랐다. 휴스턴 애스트로스 소속인 율리에스키 구리엘은 더그아웃에서 갑자기 두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가를 찢는 시늉을 했다. 백인들이 동양인을 비하할 때 흔히 쓰는 몸짓이었다. 상대팀 LA 다저 스의 선발투수인 일본인 다르빗슈 유를 겨냥한 것이었다.

메이저리그의 이런 인종차별은 악명이 높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인 박찬호 선수도 초창기에 동료들로부터 마늘 냄새가 많이 난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선수들이 정색을 하고 계속 이를 거론하자 이게 말로만 듣던 인종차별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김현수 선수에게도 메이저리그 경기 도중 관중석으로부터 빈병이 날아들었다. 이 관중은 비백인을 경멸하는 발언까지 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됐다.

종목은 다르지만 잉글랜드의 프로축구(프리미어리그)도 인종차별이 극심하기는 마찬가지다. 동양인 등 비백인 선수들은 몰지각한 동료들 외에 때로는 관중들로부터 터져 나오는 인종차별적인 말과 행동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박지성과 기성용 등 한국인 선수들이 대부분 이 같은 경험을 했다.

최근에는 토트넘 홋스퍼에서 뛰는 손흥민 선수가 인종차별 논란에 휘말렸다. 지난해 말 영국의 한 매체가 공개한 영상에는 웨스트햄 팬인 남성이 손 선수에게 “DVD를 구해달라”며 비아냥거리는 장면이 나온다. 영국 내에서 이 말은 ‘아시아계 이민자는 불법으로 복제한 DVD나 파는 사람들’이라는 인종 비하 발언의 뜻으로 쓰인다. 손 선수도 그동안 수차례 비슷한 수모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랬던 손 선수가 얼마 전 통쾌한 복수를 했다. 그는 지난 5일 열렸던 웨스트햄과의 경기에서 0-1로 끌려가다 시원한 동점골을 터뜨려 팀을 패배 위기에서 구해냈다. 득점 뒤 손 선수는 웨스트햄 관중을 향해 오른손 검지를 입에 갖다 대는 동작을 했다. 자신의 입으로 속내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누가 봐도 “앞으로는 입을 다물라”라는 의미임이 분명했다.

손 선수의 이 동작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스포츠계에서도 인종차별은 가장 저열한 행동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실력으로 편견을 이겨낸 손 선수의 의젓한 행동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