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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칼럼] 해넘이가 아름다운 도시,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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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1-04 18:57:05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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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석양과 노을이 아름다운 도시다. 새해가 시작하는 때에 웬 ‘해넘이’ 이야기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신년 벽두 해돋이의 감동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데 생뚱맞은 소리라고 핀잔 들을지도 모를 일이다.
   
신년 벽두라, 바로 그러니까 해넘이 이야기가 소중해진다. 앞으로 일 년 내내 우리 일상에서 해넘이가 훨씬 더 의미 있게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해맞이 또는 해돋이는 새해 첫날의 ‘행사’로 끝나기에 십상이다. 해돋이가 한 해의 계획된 행사라면, 해넘이와 조우하는 것은 일상에서 반복될 소중한 기회이다. 현대인들은 거의 일 년 내내 해 뜨는 것을 보지 못하거나, 보더라도 별 의미를 둘 짬도 없이 일과를 시작한다. 하지만 일과를 마치고 일터를 나서면서 지는 해를 볼 때는 종종 있다. 해넘이의 감동은 일과에 지친 현대의 직장인에게도 시심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일출보다 석양과 노을을 노래 한 시인이 많은 건 우연이 아니리라.

해돋이와 해넘이를 대하는 사람의 태도에는 이런 차이도 있다. 우리는 큰 의미를 부여하며 해돋이를 맞이한다. 하지만 일출의 순간이 지나고 태양이 하늘에 계속 떠 있는데도 그에 무관심해진다. 일몰은 어떤가. 해가 지고 나면 해를 볼 수 없다. 하지만 산 너머로, 바다 너머로, 사라진 태양의 잔영은 우리 가슴에 생생하다. 그 감동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하고, 그때 비로소 해를 여읜 설움에 잠기기도 한다. 많은 이에게 일출 이후의 일과는 대체로 정해져 있다. 그건 필요의 시간이다. 한편 일몰 이후는 일과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이다. 그래서 일상에서 가끔 만나는 해넘이의 순간들이 뜻깊다.

뜬 해는 하늘에서 홀로 빛나지만, 지는 해는 다른 천체들을 하늘로 초대한다. 우리는 달을 보고, 별을 보며, 운이 좋으면 은하수를 볼 수도 있다. 그런 하늘에는 낭만이 부유한다. 우주의 심연과 자아의 심연이 접속하는 감동적인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사랑과 철학은 밤에 그 활동성을 극대화한다.

변명이 길어졌다. 각설하고, 꺼낸 말에 이유를 달아야 하겠다. ‘해넘이가 아름다운 도시’ 부산 이야기 말이다. 부산은 한반도의 동해도 남해도 아닌 동·남해에 걸친 도시이다. 해돋이 명소로 거론되지 않아도 그리 섭섭하지 않다. 그런 명소는 주로 동해에 있으니까. 반면에 부산의 해안을 따라가며 해넘이의 감동을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장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건 큰 기쁨이다.

우선 해운대에서 다대포 몰운대까지 해넘이 ‘지면 여행’을 해보자. 해 질 무렵 동백섬 운대산에 오르면 오륙도 사이사이 수평선에 빨강·주홍·주황 삼색의 노을이 드리운다. 해가 아직 저 건너 이기대 장산봉을 어루만지기 전에 해넘이의 장관은 시작된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마린 시티 방파제 쪽으로 걸으며 광안대교 끝과 고층 빌딩 사이 ‘계곡’으로 침몰하면서 마지막 열기를 분출하는 태양 앞에 설 수 있다.

광안대교를 건너면 이기대와 신선대를 이어가며 해넘이를 볼 수 있다. 해는 계절에 따라 영도 태종산, 중리산, 봉래산 산허리를 거치며 자신의 해넘이 의례를 진행한다. 해넘이 감상법이 꼭 지는 해를 바라보는 데 있는 건 아니다. 신선대에서의 감상법은 그 반대에도 있다. 특히 겨울 해를 등지고 오륙도 쪽을 바라보면, 지는 해의 햇살이 바다의 잔물결을 은어의 비늘로 탈바꿈시킨다. 이 은빛 비늘들은 오륙도를 감싸며 섬들을 환상의 열도로 만들어버린다.

이제 부산항대교를 건너 영도 태종대에 이른다. 독도만큼 외로워 보이는 주전자 섬, 그 뒤로 넓게 퍼진 수평선을 물들여 가며 낙조가 섬을 위로하고 있다. 영도에서 남항대교를 건너 송도를 거쳐 다대포 몰운대에 이른다. 몰운(沒雲), 그 이름에 걸맞게 큰 구름은 바다를 포옹하고 작은 구름은 섬들을 애무한다. 석양은 이들을 위해 ‘노을의 왈츠’를 연주한다. 상기된 구름의 무도회는 해변의 사구도 춤추게 한다. 말문이 막히는 침묵의 경탄은 이 숭고한 정경에 바치는 찬사이리라.
바닷가 해넘이가 아니더라도 부산은 각기 색다른 해넘이 장소를 제공한다. 영욕의 역사를 되새기며 지는 해를 사색할 수 있는 자성대도 있다. 송림 사이로 지는 해를 등지고 호수의 신비로운 어스름을 즐기고 싶다면 오륜대에 가야 한다. 꽃향기 흥겨운 어느 봄날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노을을 보고 싶다면 회동 호숫가를 걸어야 하리. 해 질 녘 울음이 타는 가을 호수를 보고 싶다면 부엉산 기슭에 가야 하리.

머지않아 봄이 오면 일과를 마치는 시간과 해넘이의 시간이 일치하게 된다. 퇴근하며 뜻하지 않게 석양과 조우할 수도 있고, 가슴 두근거리며 석양을 만나러 갈 수도 있다. 기쁜 일이다. 해시계와 하루 일과의 시계가 동기화되는 건 가을에도 마찬가지다. 한여름에는 아주 늦은 시간에 해넘이를 감상할 수 있다. 그것도 좋은 일이다. 휴가철이니 말이다.

해넘이의 미학적 비밀은 겨울철에 숨겨 있다. 이른 시간에 해넘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같으면 장소에 따라 다르지만 5시 되기 전부터 해넘이 감상을 시작할 수 있다. 이는 짧은 겨울 하루를 길게 늘여서 즐기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차가운 물리학적 시간이 아름다움을 향유하기 위한 미학적 시간이 되는 것이다. 여행자들에게는 의외로 겨울이 ‘해넘이 관광’하기 좋은 때다.

   
관광(觀光)이라, 다 알고 있듯이 빛을 본다는 뜻 아닌가. 뜨는 해의 빛은 완전히 일출이 되고 나면 직접 보기 힘들다. 눈부시기 때문이다. 석양의 빛은 서서히 약해지고 일몰 후엔 빛의 잔영이 은은히 남아 오색 빛의 스펙트럼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여행자는 해가 진 후에도 빛을 보는 관광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함께 해넘이 여행을 했던 부산 토박이 친구가 사업가적 마인드로 한마디한다. “이제 보니 부산의 다양한 장소에서 보는 해넘이는 대단한 테마 관광이 되겠어!”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던가. 내 사색과 감동의 해넘이 여행이 실용적으로 해석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철학자·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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