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정세균 국회의장은 자유한국당이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의 활동 기간 연장을 요청한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개헌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을 때 특위 활동 기간을 연장하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다. 개헌특위는 개헌을 전제로 운영되는 위원회이지, 연구 활동을 위한 위원회가 아니다. 개헌에 대한 연구는 이미 차고도 넘친다.”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지난 대선 당시 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포함한 5명의 후보가 모두 지방선거를 특정해 개헌하자고 약속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하면 1000억 원 정도의 예산 절감 효과가 있다.”
결국, 국회는 지난해 마지막 본희의에서 개헌특위와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합쳐진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위를 오는 6월 말까지 가동하는 데 합의한다. 이를 두고 정 의장은 지난 1일 재차 일침을 가했다. 그는 국회에서 여야가 개헌안을 제때 합의하지 못하면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헌법상 대통령은 개헌(안)을 발의할 권능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강박관념’이란 표현까지 쓰며 올해 6월 개헌 의지를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이 생각하는 개헌의 핵심은 기본권과 지방분권이다. 기본권이야 당연하다고 치면 왜 지방분권형 개헌일까. 이 역시 이유는 ‘이미 차고도 넘친다’.
‘수도 서울’의 역사는 유구하다. 한양을 도읍지로 삼은 조선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중앙집권 국가’의 완결판이었다. 600년 넘도록 모든 것은 서울로 통했다. 몇 년간의 ‘임시수도 부산’만 스치듯 지나갔을 뿐이었다. 이처럼 뿌리 깊은 중앙집중의 도가니가 어찌 상위법 몇 개 조항을 바꾼다고 달라질까. 헌법을 바꾸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다.
지방분권형 개헌이 ‘밥 먹여주냐’고 따질지 모르겠다. 밥 먹여준다! 지방분권 개헌의 요체는 지방재정의 독립, 즉 ‘돈’으로 귀결되는 까닭이다.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과 마찬가지로 지방분권을 국가적 ‘시스템’으로 규정한다. 거꾸로 따지면 그동안 지방분권형 개헌이 실패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부산시 등 전국 자치단체들이 국회 개헌특위에 제출한 지방분권형 개헌안이 그대로 반영되면 부산시는 연간 1조 원의 추가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부산시의 본예산은 10조 원 규모. 이 중 10%의 가용 재원이 늘어나는 셈이니 사회 경제 교육 등 자치단체의 지형 자체가 달라진다. 이럴 경우 민간투자사업으로 진행하던 유료도로 건설을 부산시 재정 사업으로 추진할 수 있다. 유람선 하나 띄우는 것까지 중앙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일도 없다. 조선해양 및 해운산업의 위기 당시 ‘해양수도’는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는 지방분권 개헌이 필요한 숱한 이유 중 일부일 뿐이다.
올해 6월은 개헌을 하기 딱 좋은 시점이다. 임기 초 개헌 추진을 약속한 대통령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개헌이 번번이 실패했던 것은 대통령이 레임덕을 우려해 임기 초 개헌 논의를 막았고, 임기 말에는 레임덕 탓에 개헌을 추진할 여력이 없었던 데서 비롯됐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앞으로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물론 문 대통령이 아닌,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개헌안을 발의하고 의결하는 게 좋다.
그럼에도 ‘6월 개헌’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한국당이 반대하는 탓이다. 현재 국회 의석은 297석, 한국당은 116석으로 3분의 1이 넘는다. 개헌안 의결에 3분의 2 이상인 199석이 필요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121석)이 아무리 힘써봤자 한국당이 당론으로 반대하면 개헌 의결은 불가능하다.
한국당은 ‘곁다리 개헌 국민투표는 안 된다’ ‘땡처리 패키지 여행상품 다루듯 몰고 간다’며 ‘지방선거·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에 반대한다. 속내는 다르다. 개헌 국민투표를 지방선거와 함께하면 지방선거 투표율이 올라가 한국당에 불리하게 된다. 또 지방선거 이슈의 중심에 개헌이 자리 잡게 돼 ‘문재인 정권 중간 평가’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한국당은 대선 당시 자기 당 대선후보의 공약을 뒤엎고 ‘올해 말 개헌’으로 돌변한 데 대해 이해할 만한 이유를 설명하거나 사과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국민은 ‘회초리’를 들 수밖에 없다. 누가 꼼수를 부리는지 국민은 이미 알고 있다.
정치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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