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0일은 시인 윤동주가 태어난 지 100년이 되던 날이었다. 우리에게 윤동주는 참 많이 읽히고 사랑받아온 시인이다. 시를 많이 읽지 못한 나도 윤동주의 ‘서시’만큼은 외울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윤동주의 이 짧은 시구에 담긴 그 마음을 다 이해하기란 무척 어렵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그 심정은,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또 어떤 걸까?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다는 다짐은 그 깊이를 헤아리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의 시가 지금까지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7년 한 해, 참 감사하게도 좋은 기회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인문교육을 진행하며 전국 1만3천 명의 학생 학부모 교사를 만났고, 이들과 함께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함께 고민했다. 특히 초등학교 학생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들을 보면 한마디로 ‘살아있다’라는 느낌이 든다. 신기한 것을 보면 탄성을 지르고 고통받는 누군가의 사진을 보면 눈을 가리고 탄식한다. 질문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모습도, 공동의 작업에 점 하나라도 더 찍으려는 열정적인 모습도 참 좋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진면목은 쉬는 시간에 드러나는데, 수백 명의 학생 중 단 한 명의 아이도 앉아 있지 않는다. 모두가 어딘가를 향해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뛴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면 왠지 모르게 무기력해진다. 잠이 쏟아져 존다기보다는 습관적으로 눈을 감고, 새로운 것을 보고도 더 알고자 하는 호기심을 갖지 않는다.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손을 들기 어려워한다. 더 심각한 것은 궁금한 것 자체가 없다는 사실이다. 지적 호기심을 갖고 새로운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공부라면, 한 마디로 우리 아이들은 공부가 불가한 상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한국 학생들은 정말 열심히 공부한다. 2014년 기준 우리나라 고등학생 평균 학습시간은 일주일에 60시간으로, OECD 회원국 평균인 33시간의 2배 가까운 수준이다. 세계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는 항상 상위권을 차지하지만, 그 점수를 평균 학습시간으로 나눈 수치인 ‘학습효율화지수’에서는 늘 꼴찌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공부를 이렇게 많이 하면서 공부가 불가능한 상태로 아이들을 그대로 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다시, 윤동주의 시가 여전히 큰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인간의 보편적 마음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말을 쓸 수 없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을 할 수 없었던 시절, 조선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핍박받아야 했던 그 암흑의 시대에도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열망이 그의 시가 여전히 우리에게 읽히는 이유가 아닐까.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청소년, 청년들도 모두 꿈틀대는 삶의 기운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생기를 표현하는 것 보다 남들과 비교해서 뒤처지지 않으려 애쓰는 경우가 많다. 공부를 무작정 잘해야 한다거나, 남들이 가진 것은 나도 가져야 한다는 강박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한 경쟁적인 욕망들이 우리의 삶을 무기력하고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2018년 한 해는 조금 더 인간다운 삶, 아름다운 삶이 가능해지길 기원한다. 청년 동주처럼, 끊임없이 삶과 시대에 질문을 던지며 명징하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더 많은 새로운 세대들이 생겨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끝으로 윤동주의 삶을 바탕으로 쓰인 소설 ‘시인 동주’에 나오는 구절을 조금 길지만 옮겨 본다. “말과 글이 다르고 지내는 곳이 달라도, 사람들이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하다는 점이다. 자신이 놓인 시대와 사회의 제약 속에서도, 사람들은 삶이 던져 주는 질문을 붙들고 열심히 해답을 찾으며 살아간다. 어떻게 살 것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더불어 행복한 삶을 어떻게 누릴 것인가…. 자신의 삶에서 다 풀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혹은 다음 세대에게 넘겨준다. 이 세상에 사유하는 인간이 스러지지 않고 남아 있는 한, 그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시대를 이어 가며, 좀 더 많은 사람을 거쳐 가며, 더욱 깊어지고 풍부해질 것이다.”

인디고잉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