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동안 필자는 본 칼럼을 통해 해운강국으로 가는 길에서 우리가 처한 구조적인 여건을 살펴보고 우리가 가야할 전략적인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해운 경기는 결국 물동량과 선복량과의 수급 관계에서 결정되는 바 글로벌 물동량 증가는 제한적이지만 중국을 비롯한 주요 해운국들의 선대 확장을 통한 경쟁 심화 예상 등으로 장기적 선복 과잉이 발생해 해운 경기 부진이 예상된다. 하지만 수출입 무역을 기본 특징으로 하는 한국 경제의 풍부한 국가 해운 물동량을 잘 활용한다면 해운 성장의 잠재력은 여전히 풍부하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국가 물동량을 잘 활용하는가 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이다. 지난 몇 년간 해운 경기가 침체에 빠져 있는 동안 사회 각층에서 선·하주 상생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그것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은 충분히 축적된 것은 매우 다행스럽다. 선·하주 상생을 구체적으로 논하기 위해서는 우선 부정기선인 벌커선, LNG선, 유조선의 경우와 정기선인 컨테이너선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먼저 국가 에너지 자원을 수입하는 벌커선, LNG선, 유조선의 경우 수입화물의 상당 부문이 이미 국내 선·하주 간 장기 화물수송계약이 체결되어 있다. 다만 문제는 화주들이 운임 단가를 낮추기 위해 선박 운임이 낮은 단기시장에서 조달하는 비중을 높임에 따라 장기계약의 비중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것인데 계약 기간이 단축되면서 운임조건 등도 해운사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정기선인 컨테이너 선박의 경우는 좀 더 복잡한 상황이다. 정기선에 실어 나르는 컨테이너 화물은 주로 한 해 수송물량의 일부 분량만을 1년 단위로 정기선사와 계약하고 대부분은 그때그때 국내외 정기 선사 또는 이를 대행하는 포워딩 에이전트를 통해 현물시장에서 선박을 구하고 있어서 장기계약을 통한 국적선 적취율 제고가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내용상으로 보면 부정기선인 벌크선, LNG선 등의 경우 국가 에너지 주요 원자재의 안정적 수급 차원에서 국적선 적취율이 높고 화주가 공기업인 경우가 많아 상생 유도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반면 대형 화주가 민간기업이고 또한 대리점 등 서비스 수급관련 네트워크가 복잡한 컨테이너선의 경우는 선·하주 간 상생 유인이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운임단가를 낮추고자 하는 화주와 안정적인 물량을 확보하면서 운임을 원가이상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해운사간의 상생은 시장에만 맡겨둘 경우 자발적 협력 유인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미국, 일본 등 주요 해운강국들은 경제적으로 서로 상반된 이해를 극복하기 위해 일찍부터 비경제적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군수물자 등 국가 주요화물에 대해서는 50% 이상을 국적선을 활용하도록 ‘Cargo Preference Act’를 법제화하여 자국 해운산업의 안정적인 화물 확보를 유도하고 있다. 다른 연구에 따르면 일본은 정부부처 및 관련업계가 해운조선심의위원회 등 다양한 협의를 통해 대부분의 화물을 장기계약으로 운송하는 윈윈 해법을 도출했다. 일본 화물의 70%는 7년 이상의 장기계약을 바탕으로 운송되고 있으며, 단기시장을 통한 화물 비중은 6%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미국의 법제화 및 일본의 정부부처 주도 협의체 운용 등은 해운산업이 단순한 산업으로서의 기능을 넘어 국가안보 차원의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 서비스를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자율적인 수급에만 맡겨 놓을 수 없다는 인식을 기초로 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경우 국가 경제활동에 필요한 거의 모든 원재료, 특히 주요 화물로 선정하고 있는 원유, LNG, 철광 및 발전용 석탄의 100%, 식량의 80%를 해운으로 수입하고 국가 GDP의 35% 수준의 부가가치 생산품을 수출하고 있어 해운은 국가 경제 활동의 시작과 끝을 이루는 국가생존의 필수 산업이다. 이러한 해운 산업의 성장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앞서 해운 주요 국가들이 도입하고 있는 비경제적 해법에 대한 연구와 정책 도입이 필요해 보인다.

WTO와 OECD 회원국가로서 한국은 국제 규범 준수를 촉구해야 하는 입장에서 미국의 경우처럼 명시적인 법제화는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 반면 일본의 경우처럼 정부 주도로 관련업계가 협의체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우리 경제가 가진 풍부한 국가물동량을 우리 해운업 발전에 활용할 수 있는 상생 해법을 사회적 합의로 이끌어내는 것이 보다 유효한 방안으로 보인다. 그리고 국가필수선박제도를 개선해서 주요 화물을 꼼꼼하게 선정하고 화물 수송 규모 확대에 맞춰 국가 필수선대를 확대함과 동시에 국가 지정 필수선대를 활용한다면 우리 해운기업이 안정적 영업기반을 찾는 좋은 모멘텀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해양금융종합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