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 수년째 초긴장 상태인 한반도 정세에 변화의 기운이 감지되고 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어제 워싱턴DC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조건 없이 북한과 첫 만남을 하겠다”며 ‘공개 초대장’을 보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급 인사가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북한과 직접 대화하겠다는 의사를 공식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을 50여 일 앞두고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우리로서도 환영할 일이다.

이날 발언은 ‘비핵화 의지 표명’ ‘핵개발 동결’ 등 미국이 기존에 내걸었던 전제조건을 제쳐놓은 것이어서 파격적 제안이라 할 수 있다. 그 배경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을 통해 ‘교착 상태를 해결하려면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게 중요하다’는 현실인식을 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틸러슨 장관이 “(핵·미사일) 프로그램들을 포기해야만 대화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강조한 것도 미국의 인식 변화로 분석된다.

이제 관심은 북한의 반응에 쏠린다. 일단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북한은 지난달 29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 화성-15형을 발사하고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뒤 오히려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의 방북을 받아들이는 등 대화국면 조성을 꾀하는 듯한 신호를 보냈다. 이런 와중에 이뤄진 물밑 접촉 끝에 나온 제안이라는 점이 고무적이다. ‘벼랑 끝 전략’으로 북한이 1차전에서 판정승했다는 평가도 있다. 북한의 기를 어느 정도 살려줬다는 이야기다. 이 정도 왔으면 이제 북한도 속히 대화에 응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오늘 베이징에서 열리는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에 더욱 관심이 쏠린다. 한중 정상이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공개 지지함으로써 대화 기운이 더욱 고조될 수 있다. 그러나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소외, 어정쩡한 ‘핵동결 인정’ 등은 우려되는 부분이다. 문 대통령이 밝혔듯이, 정부는 “무조건 국익 우선”이라는 분명한 원칙 아래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