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과 죽음은 삶 속에 늘 함께하는 피할 수 없는 과업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탄생은 축복하면서도 죽음 앞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인식이 지나치게 부정적이어서 상실의 슬픔 앞에 놓인 수많은 사람을 박탈적 비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현상에는 죽음을 언급하는 것에 대한 불안과 거부감도 일조한다. 근본적으로 삶과 함께하는 죽음을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한 데에서 발생한 문제인 것이다. 죽음을 연구한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슬픔이나 죄책감이 분노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한다. 슬픔에 배어 있는 분노의 감정은 위장되거나 억압되어서 슬픔을 연장하거나 엉뚱하게 표출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존엄사법이 통과된 뒤 시행되고 있다. 죽음을 달리 보아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죽음이라는 명백한 끝은 현재적 삶을 더 절실한 욕구에 휘둘리게도 하지만, 깊은 성찰을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를 지니게도 만든다.

그러나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만 적용되어야 할 존엄사법이 우려스러운 생각으로 채워지고 있는 이유는 과학과 돈이 신의 자리를 점령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이 법은 반드시 필요하다. 법의 시행 이전이라면 이미 혼수상태에 들어간 환자 외에는 그 누구도 연명 치료 중단을 결정할 수가 없었다. 의료보험료의 80%에 가까운 비용을 연명치료에 쓰고 있다는 통계 수치가 아니라도 환자에게 결코 만족스러울 수 없는 임종의 순간을 강제적으로 부여하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바람직한 모습이라 보기는 어렵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순간이기에, 죽음 교육을 통한 삶의 교육은 반드시 선행되어야만 한다. 존엄사법은 그런 의미에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전환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하게 되면 적어도 자신이 연명 치료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문제도 결정해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면 곧 사망할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이 있어도 모두 숨을 거두지는 않는다.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던 어머니의 퇴원을 강행하면서 이제 곧 ‘죽을 예정’이라고 전하던 친구의 말은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까지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예외 없는 규칙은 없는 것처럼 존엄사법이 없었던 예전에도 그렇게 죽음이 선택되기도 했다. 오랜 세월 동안 병원을 자주 드나들었던 내게는 환자와 환자 가족들에 대한 기억이 유독 많다. 그 중에서도 어머니의 입원비에 대한 내역을 듣자마자 퇴원을 강행했던 어떤 아들에 대한 기억은 아프게 각인되어 있다.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는 적절한 치료를 해야만 한다. 그래서 어마어마한 비용을 짊어지게 되었다면 그 또한 어찌할 방도가 없는 일이다. 우리의 주변에는 큰 병을 앓는 가족으로 인해 가산을 탕진하게 된 이가 짐작보다 훨씬 많다. 그래서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도 하고, 환자를 앞에 두고도 예사로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도 한다. 실제로도 평생을 헌신한 가장이었지만 교통사고로 휠체어 신세가 되니 버스정류소나 유원지에 버려지는 사례는 종종 일어나고 있다.

인간의 존엄의 문제가 돈으로 분류되고 환산된다면 사람 사는 세상으로서의 희망은 접어야 한다. 오래전, 앓고 있던 아이를 의사가 ‘실험용으로 기증하라’고 했을 때 내가 절망한 것은 그 한마디 말 속에 담긴 삶에 대한 인식의 수위 때문이었다. 도움을 받아야하는 처지가 되었다는 이유로 살해되어도 좋다는 명분을 갖게 된다면 살아야할 가치 있는 것의 기준은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북한에서도 평양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장애아가 태어나면 국가에 실험용으로 기증을 해야 한다. 이번 생은 망했다는 젊은이들의 한숨 속에도 삶에 대한 그러한 폭력적인 잣대가 만든 박탈적 비탄이 절절하게 배어 있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은 인간의 존엄이다. 모든 인간이 어떠한 상황에 놓이든 존중 받고, 그 어떤 것으로도 박대당할 수 없다는 규칙이 지켜질 때 비로소 자유와 평등의 기둥을 세울 수가 있다. 세월호에 국회의원 자녀가 많았거나, 대통령의 친·인척이 있었어도 그렇게 수장을 시켰겠냐고 말하게 되는 상황은 점검이 필요한 것이다. 이는 인간의 목숨이 가진 것에 의해 존중되기도 하고 존중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비극적 현실에 대한 박탈적 비탄이 만연해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다.

의술이 발달해도 가진 이들만 그 혜택을 누리는 것처럼 존엄사법은 시행되고 있지만 돈 없는 사람의 목숨은 여전히 존엄하지가 않다. 그 어떤 참담한 상황이 되더라도 인간의 존엄을 지켜주고 배려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도록 이끄는 교육이 절실한 이유이다.

동의대 교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