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쇼클리 등은 수도꼭지처럼 전류 흐름을 손쉽게 조절하는 트랜지스터를 발명했다. 이는 진공관처럼 전기 신호를 증폭할 수 있어 라디오나 앰프에 이용됐다. 전류 흐름을 순간적으로 차단, 허용할 수 있는 트랜지스터를 다수 연결한 반도체 집적회로가 개발됐다.

이를 이용한 컴퓨터 중앙연산장치(CPU)는 수학 계산, 이미지 및 동영상처리 등 어떤 복잡한 계산도 소프트웨어 알고리듬이 시키는 대로 0과 1의 이진법 신호 흐름으로 변환하여 처리하는 만능기계가 되었다. 지난 60여 년간 컴퓨터의 처리속도가 지속적으로 빨라졌다. 1980년대 중반 세계에서 가장 빨랐던 크레이 II 슈퍼컴퓨터는 오늘날 스마트폰보다 늦다. 우리 손바닥에 슈퍼컴퓨터를 갖고 다니는 셈이다.

연산 능력을 더욱 높이기 위해 계산 작업을 분할하여 다수의 중앙연산장치로 동시에 병렬로 처리하는 슈퍼컴퓨터와 그래픽카드가 개발됐다. 최근에는 사람의 뇌신경망의 학습 및 인지 과정을 모사한 인공신경망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여 1000억 개가 넘는 뉴론을 모사하여 부분적으로는 사람의 인지 및 판단 능력에 근접하고 있다. 인공신경망의 학습알고리듬을 직접 연산해주는 신경망칩도 개발되어 시각 처리 등에 특화된 인공지능에 사용하고 있다. 사람의 대뇌피질은 ㎣ 당 50억 개의 뉴론을 갖고 뉴론의 행태와 뉴론들 간의 관계가 훨씬 복잡하다. 그러나 지금의 연산속도 발전 추세를 감안하면 30여 년 후에는 사람 뇌의 연산능력을 초월하는 인공지능이 탄생할 수도 있다.

최근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자들의 행태에 대해 현대물리학에서 많은 연구가 있었다. 우리 상식과는 많이 다른 알쏭달쏭한 행태가 많다. 관측하려는 순간 상태가 변화한다는 불확정성의 원리, 입자 파동 에너지 간의 복잡한 관계로 인해 존재와 실체가 모호해진다. 0이면서도 1일 수 있는 양자 중첩, 먼 거리의 양자쌍끼리 동기화되어 한쪽이 변화하면 다른 쪽도 순간적으로 변화하는 양자 얽힘의 원리를 이용하여 고속 연산을 하는 양자컴퓨터가 등장했다. 종래의 0과 1의 순차적 이진법 계산이 아니라 한 번에 양자쌍인 큐빗 단위로 계산을 하므로 n 큐빗 양자컴퓨터는 계산 속도가 2의 n제곱만큼 빨라진다. 최근 IBM에서 50 큐빗 컴퓨터를 개발했다. 이 정도면 최고의 슈퍼컴퓨터 연산속도를 넘어서고 개인용 컴퓨터보다는 수억 배 이상 빠르다.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와는 달리 비결정적 연산을 하므로 특성과 용도가 다소 다르다. 시뮬레이션, 기상정보처리, 암호풀이, 패턴분석에 유용하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오늘날 디지털 온라인 세계는 복잡한 알고리듬으로 생성한 암호체계에 기반하고 있다. 지구상의 모든 컴퓨터를 이용해도 수천 년 이상 걸릴 암호체계가 양자컴퓨터를 이용하여 패턴을 분석하면 순식간에 풀린다. 새로운 암호체계를 개발하지 않으면 온라인 디지털 문명이 무위로 끝날 판이다. 요즘 열풍이 거센 비트코인 등의 가상화폐도 위험하다. 가상화폐는 고성능컴퓨터로 어려운 암호를 겨우 풀어내야 조금씩 채굴되는데 양자컴퓨터로 암호를 순식간에 풀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10년 내에 가상화폐 암호가 풀릴 것이라고 한다.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유념해야 한다.

양자컴퓨터의 초고속 패턴인식 능력은 대량의 데이터에서 패턴을 추출하여 학습하는 머신러닝을 고속화시켜 인공지능 능력이 비약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축복일지 재앙일지 아무도 모른다.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온라인 전자결제서비스인 페이팔과 본격적인 전기차 기업인 테슬라 자동차를 일으킨 억만장자 엘론 머스크 등은 비관론, 페이스북 창업자 저커버그 등은 낙관론으로 논쟁이 뜨겁다.

양자를 원하는 대로 제어하기는 대단히 어려워 양자컴퓨터가 그렇게 쉽지는 않다. 그러나 기술적인 문제가 조금씩 해결되고 있다.

또 다른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인가. 우리에게는 전자피아노 개발자로 널리 알려진 커즈와일은 수년 전 저서 ‘특이점이 온다’에서 2045년경이 되면 컴퓨터 및 인공지능이 사람을 뛰어넘어 천지개벽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그 특이점이 이제 조금씩 실체가 보이기 시작한다.

K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