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 “나의 원수의 적은, 나의 친구다”라는 재미있는 속담이 있다. 이는 역으로 “나의 친구의 친구도 나의 친구다”라는 것을 의미하는데, 흥미롭게도 이 두 논리는 현실정치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논리임에도 불구하고 ‘객관적 검토’라는 핵심적인 요소를 간과하는 측면도 있다.

냉전 시대 이후 기존의 다국적기구 구축 체제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으로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 참여에 대한 한국의 정중한 거절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 구상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해석과 비판을 일으켰고, 이를 비판하기에 앞서 구상 자체가 구체화되지 않았다는 설득력 있는 지적도 있었다.

이러한 한국 정부의 대응에는 곧 있을 중국과의 회담, 일본의 군사적 의도, 그리고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이 이 계획을 새로운 주요 구상으로써 수용할 것인가 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중국의 부정적 반응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이 에너지, 무역에 있어서 인도 대서양의 안정과 안보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생각해 보면, 이번 구상에 대해 좀 더 심도 있는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현존하는 아시아 태평양의 다국적기구 구축체제는 이미 기존 국가들의 기대를 수용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이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인도·태평양 구상은 꽤 오랫동안 하나의 대안으로 언급됐다. 냉전 시대 이후 ASEAN, APEC, EAS를 포함한 다국적기구들은 기존 아시아 국가 이외 포괄적으로 다양한 국가를 받아들여 왔지만 지정학적으로 서태평양의 개념은 제약적이었고 더 큰 아시아적 사고를 포함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아시아인을 위한 아시아’라는 역사적으로 강조되어 온 이 테마는 지역 공통 과제뿐만 아니라 아시아 각국의 자발적 문제해결 능력을 강조해왔다.

또 인도 태평양 구상을 단순히 일본 주도적인 정책으로 접근하지 않고 그 전부터 존재해 왔던 변화의 흐름으로 생각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인도 태평양 지역에서 빠른 성장을 이루고 있는 중견국의 잠재력은 아시아의 중심축을 옮기는 데 큰 역할을 하였고 일본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등의 협력과 이해 증진은 이러한 시작을 의미하였다. 부상하는 인도에 남아시아는 너무 작았고, 호주는 환태평양의 섬들보다 훨씬 큰 영향력 가지고 있으며, 중국의 시장, 그리고 금융적 자원은 발전적 활력을 확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에 결국 기술과 경제력을 갖춘 한국과 일본이 아시아의 국면을 바꾸는 데 필수적인 파트너로 부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일지도 모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10년 전 인도 국회에서 무굴 제국의 왕자였던 ‘다라 시코가’의 1655년 작품, ‘두 대양의 합류’를 인용하며 “각기 다른 곳에서 온 물줄기가 하나의 바다에서 합류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태평양과 인도양은 이제 자유와 번영의 바다로써 역동적인 결합을 가져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변화를 표현하듯 호주는 2013년 공식적으로 본 지역을‘인도 태평양’으로 재정의하였고, 같은 해 인도 모디 총리도 호주를 ‘아시아 태평양과 인도양 지역의 심장’이라 표현했다.

2015년 중반에는 인도 호주 일본이 삼자회담을 통해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도전 과제들을 직시하고 논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만들었다.

이러한 협력이 중국의 견제를 의미한다는 해석은 다시 한 번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중국과 인도는 경제적 ‘동력’이고 그들은 경제적 발전을 위해 해외로도 관심을 돌리고 있다. 또한, 양국은 국경 논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단순히 적으로 보기보다는 무역 상업 문화 관광 방면에서 파트너십을 통해 번영하려는 의지도 보여준다.

한국은 아시아라는 지역 내에서 중요한 국가적 역량을 가진 나라이자 균형자의 역할을 잘할 수 있는 잠재력의 나라이다. 과거 강한 이웃들 사이에서의 한국의 경험과 역사적 사실들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과거의 경험이 원대한 미래의 기회를 잡는 것에 방해가 된다면 이 또한 아쉬움을 남길 것이다.

결국, 정치에서의 어렵고도 중요한 지혜는 단순히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객관적인 협력 관계를 의미하고 이러한 관계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지를 한 번 더 고민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부산국제교류재단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