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인물’(Person of the Year)은 90년을 이어온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대표 상품이다. 1927년 대서양 횡단 처녀 비행에 성공해 처음 등장한 찰스 린드버그나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 특정인이 주류를 이루지만, 2014년 에볼라 치료 의료진, 2011년 시위자, 1988년 위기에 처한 지구처럼 선택의 폭을 넓혀왔다. 연말마다 그 해를 통틀어 세계적으로 가장 두드러진 인물 등을 내세워 한 해를 정리하는 의미가 각별하다. 조만간 공개될 2017년 ‘올해의 인물’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느닷없이 트위터에 올린 글 덕분에 타임은 손 안 대고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타임이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겠다고 제의했으나 거절했다는 내용이다. 타임 측은 ‘12월 6일 게재하는 날까지 공개하지 않는다’며 사실이 아니라고 즉각 반박했다. 지난해 ‘분열된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제목으로 ‘올해의 인물’ 주인공이 됐던 트럼프 대통령의 ‘제 팔 제가 흔들기’식 해프닝으로 여겨지나 연례행사인 ‘올해의 10대 뉴스’를 준비해야 할 시기가 됐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러웠다.

사무실 옆 가로수는 벌써 낙엽을 떨구고 겨울나기에 들어갔다. 줄기와 잎자루 사이의 특수한 세포층인 떨켜가 한 일이다. 이보다 중요한 작업은 잎이 떨어진 자리와 줄기나 가지 끝에서 벌어진다. 내년을 기약하는 겨울눈이 움튼다. 새 잎과 새 꽃을 품은 작은 우주다. 저절로 그래서 그러한 것, 자연이연(自然而然)의 이치를 사람이 따라가지 못하니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건 당연하다.

때맞춰 올해 국민의 관심이 쏠린 이슈가 무엇인가를 다룬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전국 성인 501명을 대상으로 벌인 ‘2017 올해의 이슈’ 조사(95% 신뢰수준, 표본오차 ±4.4%포인트, 리얼미터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47.6%로 첫손에 꼽혔고 문재인 정부 출범 16.9%, 북한 핵 실험 8.7%,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7.7%, 포항 지진 및 수능 연기 7.3%, 이영학·인천 여아 살인사건 등 잇단 잔혹사건 4.3%, 살충제 달걀 파동 3.0%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겠으나 큰 무리가 없는 듯도 하다. 국정 농단에 분노한 촛불 민심이 연 올해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세운 올해 화두인 ‘재조산하’를 바탕으로 취임 이후 계속되는 적폐 청산, 비정규직·최저임금·노동시간 등 노동 개혁의 핵심 의제 추진, ‘사람 중심 경제로 양극화 없는 3% 성장’을 추구하는 가운데 개선 기미를 보이는 경제 지표 등이 그 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키워드는 안전이지 싶다. 살충제 계란 파동과 일회용 생리대 유해성 논란은 ‘일상의 안전’을 되물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진과 원전이었다. 수능까지 1주일 연기한 포항 지진은 일상의 안전을 넘어 생존의 문제로 다가왔다. 생존배낭이 필수품이 되는 각자도생의 사회는 정녕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원전 밭을 끼고 사는 부산 사람들이 느끼는 강도는 더했다. 지진이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문제라 하나 0.0001%의 안전 사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둬야 마땅하다. 특히 문 대통령의 신규 원전 백지화와 탈핵 선언에 따라 신고리5·6호기 공사 재개 여부를 ‘숙의’한 공론화위원회는 안전의 문제엔 시민이 주인이 되어야 함을 확인했다. 부산에서 빚어진 여중학생 집단 폭행사건을 비롯해 입에 올리기도 싫은 이영학 사건,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도 같은 범주 넣고 되짚어볼 사안이다. 그 와중에 3년 만에 인양된 세월호와 유골 일부의 발견 사실을 은폐한 해양수산부를 떠올리면 안전한 대한민국이 아직은 갈 길이 먼 일임을 깨닫게 한다.

더 큰 위협은 외부로부터 왔다. 특히 ‘국가 핵무력을 완성했다’며 미국 전역을 사정권에 두고 한밤중에 기습 발사한 북한의 화성-15형 미사일은 한반도를 시계 제로 상태로 만들었다.

우리 사회의 안정과 국가의 안위가 백척간두에 섰다는 긴박한 현실 인식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 수 없다.

문 대통령의 ‘재조산하(再造山河)’엔 폐허가 된 나라를 다시 만들지 않으면 죽을 자격도 없다던 임진왜란 때 충신 이순신과 류성룡의 결기가 담겨 있다. 안전한 대한민국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이어야 한다. 대한민국 대개조의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하고, 불안 요소를 근본적으로 방지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쏟아야 한다. 그렇게 안전이 각인되는 2017년이길 바란다.

남은 게 있다면 낙엽을 보고 내년을 기약하는 우리 각자의 다짐이다. 올해 탄생 100년을 맞은 청년 시인 윤동주는 그의 시 ‘참회록’에서 이렇게 읊었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