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김용석 칼럼] 버리고 떠날 수도 없는 ‘삶의 터전’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11-30 19:35:17
  •  |  본지 30면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시뻘건 용암이 화산의 분화구로부터 쏟아져 나와 마을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또 다른 용암 덩어리들은 산의 옆구리를 뚫고 줄기를 이루며 산기슭의 농장지대로 향하고 있다. 용암의 줄기들은 마치 산을 뚫고 나온 거대한 ‘불덩이 괴물’ 같다. 40여 년 전 로마 유학 시절 알게 된 시칠리아섬 에트나 화산 폭발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에트나 화산은 빈번한 폭발과 분화로 유명하다. 필자가 유학하던 10여 년 동안에도 여러 차례 폭발이 있었다. 당시 ‘매번 피해를 당하면서 그곳 주민들은 왜 이주하지 않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철없고 어리석은 물음이었다. 이재민이 인터뷰에서 한 말이 정답이었다. “내 ‘삶의 터전’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불의 고리’라고 불리는 환태평양 조산대에도 수억 명의 사람이 대도시를 건설해서 살고 있다. 그들은 지진에 대비하며, 또는 여러 차례 지진 피해를 복구하며 끈질기게 살아가고 있다. 그곳이 그들의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불의 고리를 이루며 미국 서해안 지역을 남북으로 1200㎞나 관통하는 샌 안드레아스 단층대 주위의 도시들에서는 참혹한 경험도 했다. ‘1906년 샌 프란시스코 대지진’이 대표적이다. 도시의 80%가 파괴되고 3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하지만 도시를 재건해서 여전히 수많은 인구가 살고 있다. 영화 ‘샌 안드레아스’(2015년)는 미국 서부 지역 전체가 대지진에 휩싸이는 상상의 재난을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거의 전파된 도시를 보며 아내가 묻는다. “이제 어떻게 하지?” 남편이 답한다. “재건해야지.” 그들은 떠나지 않는다. 삶의 터전을 재건해서 그곳에서 살고자 한다.

이런 장면은 언뜻 닭살 돋게 하는 미국식 영웅주의를 보여주는 것 같다. 감독은 그렇게 의도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밑에는 생명체의 진실을 담고 있기도 하다. 모든 생명체는 삶의 터전을 떠나지 않으려 한다. 이동 능력이 없는 식물에는 당연한 것이고, 모든 동물은 ‘습관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광활한 초원을 이동하며 풀을 뜯는 초식동물이든, 하룻밤에도 수십㎞를 이동하며 포식 활동을 하는 육식동물이든 자신이 익숙해지고 습관화된 영역 또는 삶의 터전이 있다.

다른 동물보다 두뇌가 더욱 복잡한 인간은 평생 아주 다양한 것에 대한 습관을 만들어 간다. 고도의 문명화 과정을 이루어낸 인간은 여기에 더해 ‘관습의 동물’이다. 습관은 개인적 차원의 것이고 관습은 사회적 차원의 것이다. 습관과 관습으로 촘촘히 직조된 삶의 터전은 인간의 모든 활동에서 베이스캠프와 같은 역할을 한다. 사람들이 멀리 여행을 떠나기도 하며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언제든 편안한 베이스캠프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떠도는 생활을 하는 것 같은 유목민도 돌아갈 수 있고 지키고자 하는 삶의 터전이 있다. 화산 폭발, 지진, 해일 같은 자연재해는 삶의 터전을 위협한다. 그곳에서 사람들을 광폭하게 몰아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쉽게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나지 못한다. 그것이 아무리 살기에 열악한 곳으로 변하더라도 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안전의 과제’가 대두한다. 불가피한 자연재해가 발생해도 피해를 줄이고 안전을 위해 대비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며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버리고 떠날 수 없는 삶의 터전은 가능한 한 안전하게 지킬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안전 의식과 실천 의지, 그리고 실제 행동의 현실은 매우 걱정스럽다. 필자는 오래전 공적 매체에 기고하기 시작할 때부터 안전의 주제를 시급히 중요하게 다루어왔다. 안전 불감증이 아니라 ‘불안전 불감증’이라는 말까지 만들어 쓰면서 강조했었다. 안전한 것은 굳이 감지하지 않아도 문제없지만, 그 반대인 불안전, 곧 위험을 불감하면 큰 문제라는 뜻에서 말이다. 그런데도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안전 문제와 연관한 의식과 실천의 ‘적폐’야말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 같다. 작년과 올해 연이은 영남지역 지진으로, 지진에 관해서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장기적 계획에 따라 ‘방재 인프라’를 구축하는 작업을 공적 기관들이 책임지고 해 나갈 것을 기대한다. 더 근본적인 것은 시민 각자가 해야 할 일이다. 안전에 관한 한 거시적인 계획과 실천도 중요하지만 미시적이고 세부적인 것 역시 소중하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이제 이 말을 상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우리 각자가 일상의 작은 안전을 위한 삶의 방식에 익숙하지 않으면, 큰 안전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전 의식과 실천에는 꾸준함이 요구된다. 일상의 안전이 생활화되어 있지 않으면, 큰 재해 앞에서 쉽게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지진뿐만 아니라, 태풍, 홍수, 폭설 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모든 자연재해에 대해 그것이 인재(人災)가 되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은 우리 일상생활의 좋은 습관에 달려 있다.

자연재해 앞에서 우리의 심리 상태도 중요하다. 화산 폭발과 지진 같은 자연의 폭력 앞에서 사람들은 무기력하게 허무주의에 빠지거나 패배 의식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해봐야 소용없다는 식의 ‘재해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더구나 지진의 경우 현재 과학으로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다. 지진의 장소는 어느 정도 예측할지 모르지만 언제 일어날지는 여전히 맞히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진 예측은 ‘유혹적인 신기루’라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바로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안전을 위해 대비해야 하는 과제의 중요성은 상승한다.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철저한 대비의 필요성이 절대적으로 증가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위험 때문에 대비의 과제가 중요해진 것이다. 대비는 예측할 수 있을 때만 하는 게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분명히 알게 된 건 이 점이다. 적어도 한반도에서 지진의 위험 밖에 있는 지역은 없다. 지진의 위험은 상존한다. 그래서 더욱 안전을 위해 대비해야 한다. 위험은 자연의 조건이고, 안전은 문명의 과업이다.

영산대 교수·철학자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건강한 부산을 위한 시민행동 프로젝트
많이 본 뉴스 RSS
  •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스포츠

부울경 국회의원에 듣는다
민홍철 국방위원회 민주당 간사
부울경 국회의원에 듣는다
이채익 행안위 한국당 간사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

무료만화 &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