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뉴스부의 하루는 바쁘다. 전쟁이다. 신문사의 전통적 ‘3D 부서’는 단연 사회부였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이젠 디지털뉴스부가 3D의 ‘최고봉’이다. 고상한 ‘어젠다 세팅’ 따위 잊고 산다. 어디 감히 언론이 의제를 설정하고, “나를 따라오라”며 여론을 주도한다는 말인가(신문사 디지털뉴스부 현실이 그렇다는 얘기다). 디지털뉴스부 기자는 24시간 내내 독자의 꽁무니를 숨 가쁘게 따라다닌다.
독자 혹은 뉴스 소비자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SNS, 주요 커뮤니티 게시판 등을 통해 언론에 끊임없이 기사를 주문한다. 그들의 궁금증을 해결하고,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디지털뉴스부 기자는 쉴 새 없이 취재하고 기사 쓴다. 기사 전송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독자는 거들떠보지 않는다. 속도는 생명이다. 속칭 ‘낚시질’이 통하던 시대도 갔다. 독자는 무서울 정도로 냉철하다. 기사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거나, 뜬구름 잡는다 싶으면 가차 없이 ‘기레기’ 공격을 날린다. “그 머리로 어떻게 기자가 됐냐”는 반응도 단골 댓글 중 하나다.
디지털뉴스부 기자들끼리 하는 말이 있다. “대중의 마음을 읽지 못한 기사는 매몰차게 버림받는다.” 그런데 그 ‘대중의 마음’을 읽는 게 무척 어렵다. 시시각각 변한다. ‘동쪽 끝’에 한참 머물다 갑자기 ‘서쪽 끝’으로 튀기도 한다. 그러면서 또다시 언론에 요구한다. “따라올 수 있으면 따라와 봐.”
기획탐사팀에서 디지털뉴스부로 자리를 옮긴 지 한 달째다. 호흡과 성격이 전혀 다른 부서에서 극심한 혼란을 겪을 때, 디지털뉴스부를 먼저 거쳐 간 후배 기자 한 명이 이런 조언을 해준다. “선배, 이 부서에선 자기를 빨리 내려놔야 합니다.”
‘내려놓는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다. 지금은 이렇게 해석한다. ‘체면 차리지 않기’ ‘고상한 척하지 않기’ ‘독자가 부르면 그때그때 즉시 답하기’. 디지털뉴스부 기자라면, 독자가 무엇을 바라든 가장 빨리 그의 눈앞에 생생한 뉴스를 배달해야 한다. 독자의 요구가 너무 싱겁고, 터무니없어도 성실하고, 진지한 기사로 신속하게 답해야 한다. 이게 바로 디지털 세상에서 언론이 독자와 소통하는 길이다.
국제신문 디지털뉴스부는 매일 수백 건의 기사를 쏟아내고, 그날 치 히팅(기사 조회 수)으로 노동의 성과를 평가받는다. 몇백만이 넘는 히팅에 환호할 때도, 그 절반도 안 되는 히팅에 좌절할 때도 있다. ‘성적표’에 따라 신문사의 위상과 매출이 달라지기 때문은 아니다. 히팅이 잘 나온 날은 독자와의 소통에 성공해서 기쁘고, 히팅이 엉망인 날은 독자와의 소통에 실패해서 괴롭다.
요즘 정부가 하는 일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청와대가 홈페이지에 개설한 ‘국민청원 게시판’을 두고 하는 말이다. 30일간 20만 명 이상 서명한 청원에 대해 정부·청와대 책임자가 공식적으로 답변한다는 게 원칙이다. 이 규정에 따라 지난 26일 조국 민정수석이 ‘낙태죄 폐지 청원’에 답했다. 해법을 내놓진 못했지만, 임신중절 실태조사 재개 방침을 밝혀 낙태를 둘러싼 공론의 장을 새롭게 열었다. 체면 차리지 않고, 고상한 척하지 않고, 국민이 부를 때 즉시 답했다는 점에서 반갑다.
그런데 이 국민청원을 놓고 이런저런 뒷말이 나온다. “여론 수렴이냐, 왜곡이냐” “토론이냐, 갈등 조장이냐” “제안이냐, 뗏법이냐” 등의 논란이 진원이다. ‘군 내 위안부 재창설’이나, ‘여성 징병 의무화’와 이에 맞대응한 ‘남성 인공자궁 이식’ 등 수긍할 수 없는 청원이 잇따른 것도 문제다.
그렇다 해도, 아무리 뜬금없고 일부 몰지각한 군상의 떼쓰기라 해도, 정부는 민심이 부르면 답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쏟아지는 국민청원에 관해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어떤 의견이든 국민이 의견을 표출할 곳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민청원을 두고 벌어지는 논란을 의식한 발언인데, 대통령의 인식이 과거 ‘어느 정부’와는 다르다는 점에서 또 반갑다.
자, 이제 정부는 지금의 다짐을 잊지 말고 시시각각 어디로 튈지 모를 민심을 열심히 따라다녀 보시라. 그렇게 민심과 소통하고, 갈등의 해법을 찾고, 때로 기뻐하고, 때로 괴로워하시라. 국민이 부른다. 부르면 답하는 게 도리다.
디지털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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