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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건 칼럼] 또다시 요행만 바랄 순 없다

1년 사이 두 차례나 강진, 수능일 피한 건 천우신조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매뉴얼 등 보강과 함께 수능 자체 재점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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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경주 지진이 남긴 교훈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으로 우리나라가 더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나면서 여러 가지 대책이 세워졌다. 한두 해 만에 해결될 사안이 아니긴 해도 차근차근 전례 없는 변화가 진행 중인 것만은 사실이다. 이번 포항 지진 때 경주 지진 당시보다 한층 빨라진 통보체계가 그 한 예다. 만약 경주 지진이 없었더라면 뒷북 통보에 국민은 허둥지둥하며 혼란에 빠졌을 게 분명하다.

크게 주목받지 않았지만 또 하나 있다. 수능 때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우친 점이다. 지난해 경주 지진은 9월 12일 발생했다. 수능을 두 달 여 앞둔 시점이다. 자연스럽게 수능일에 지진이 일어났을 때 대비책이 있느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여지껏 당시와 같은 강진을 겪은 적이 없던 터라 교육부에 관련 매뉴얼이 있을 턱이 없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수능을 앞두고 교육부는 관련 전문가들 의견을 모아 수능 당일 지진 발생 때의 매뉴얼을 긴급히 마련했다. 지진 상황에 따라 3단계로 각 시험장에서 대처하도록 한 게 골자다. 교육부 매뉴얼을 두고 당시 교육계 인사들은 상황별 대처 방안이 구체적이지 못해 효과가 있을까 하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어쨌든 수능일에 지진은 일어나지 않았고 매뉴얼은 우리 관심 속에서 잊혀져 갔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런 매뉴얼이라도 만들었다는 게 경주 지진의 또 다른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수능 전날 엄습한 포항 지진 때 다소 오락가락하긴 했지만 최종적으로 연기를 결정할 수 있었던 것도 허술하나마 매뉴얼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판단은 옳았다. 비록 마지막 시험시간까지 정부는 물론 온 국민이 가슴을 졸였지만 2.0 미만의 여진이 네 차례 있었을 뿐 무사히 수능이 치러졌다.

하지만 수능에 관한 한, 경주 지진의 교훈은 거기까지였다. 사상 처음인 재난에 따른 수능 연기 결정 이후의 일은 아무도 겪어보지 못했다. 수많은 우려가 터져나오자 정부는 지난 20일 ‘수능 시행 범정부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수능 직전 여진 발생 시 예비시험장 활용 및 당일 발생 시 단계별 대처 가이드라인이었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에도 불구하고 세부적 상황은 현장의 판단에 맡긴다는 방침 등을 놓고 감독관 등의 불만이 이어졌다. 급기야 교육부는 대피 결정 등 현장의 판단에 대해서는 감독관 책임을 묻지 않는다며 불끄기에 나서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3단계로 된 대처 가이드라인이 지난해 경주 지진 이후 마련한 것과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올해 가이드라인에 대한 현장의 우려는 이미 지난해에도 똑같이 제기됐다. 그나마 지난해 가이드라인이 마련되면서 포항 지진 이후 수능 연기를 신속히 결정할 수 있었던 건 다행이긴 하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록 가이드라인은 서랍 속 깊숙이 잠자고 있었다. 지난해 별 탈이 없었는데 또 수능일에 설마 지진이 일어날까 하는 불감증이다.

그래서는 안 됐겠지만 수능 당일 규모 3~4 이상의 지진이 일어났을 경우를 가정해보지 않을 수 없다. 전국의 수능 시험장은 1180개다. 3단계 매뉴얼이 있다고는 하나 현장 감독관이 두부 자르듯 명확하게 판단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같은 지진 규모에도 시험장에 따라 현장의 판단은 다를 수밖에 없고 그에 따른 결과는 대혼란이다. 짐작건대 그토록 준비도 없이 수능을 연기했느냐고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을 것이다. 교육부는 그저 무탈하게 수능이 끝난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겠지만 지난 1년간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해 가이드라인을 더욱 면밀하게 보완했어야 했다.

이게 다가 아니다. 아무리 치밀한 대비책이 있다 해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혼란이 없을 수는 없다. 수능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간 한날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수험생의 인생이 결정날 수도 있는 현행 수능 방식을 두고 개선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재시험 등을 대비한 문제은행식 출제가 대표적이다. 우리와 상황이 다르긴 해도 일본과 미국은 이런 방식을 택하고 있다. 문제은행식이 아니라면 최소한 여분의 시험문제를 준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어떤 방식이 됐든 두 차례 강진으로 수능을 지금대로 유지해선 위험천만하다는 것만은 분명해졌다.

1년 새 두 차례의 강진이 수능일을 비켜간 것은 천우신조였다. 그러나 또다시 요행만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잇단 강진의 교훈을 무시하다간 언젠가 호된 재앙으로 되돌아 올 수밖에 없다. 교육부의 매뉴얼이 서랍 속에서 또 잠자도록 해서는 안 된다. 지진 등 재난은 언제 어디서 갑자기 닥칠지 모르는 법이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상시적으로 대비책을 준비해야 할 이유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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