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환 부산대학교 총장은 2008년 펴낸 ‘전호환 교수의 배 이야기’에서 ‘배의 발달사는 인류의 역사이고 조선산업은 그 시대 과학과 기술의 결집체’라고 강조했다. 저자는 ‘이공계 교수가 전공 서적이 아닌 이야기책을 쓴다는 것은 외도’라며 조심스러워했지만, 장보고와 이순신 장군에 이어 세 번째 찾아온 ‘바다로 나아갈 기회’를 잃지 말자는 간절한 바람을 담았다. 동북아 해상권을 장악한 9세기 장보고의 시대, 세계 해전사를 새로 쓴 16세기 이순신 제독의 시대에 이어 우리나라가 세계 조선 1등 국가를 구가하던 때였다.

배에 얽힌 역사와 과학적 해석,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첨단 선박과 미래 블루오션을 제시한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저자와 의논하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특히 쇄빙선을 다룬 내용이 각별하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이 우리나라도 1만ｔ 이상 대형 제2 쇄빙연구선 건조를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쇄빙선은 바다의 얼음을 깨면서 운항하는 배다. 러시아는 1898년 최초의 북극해용 쇄빙선인 예르마크호를 건조, 북극해 탐사와 북극항로 개척에 사용했다. 1960년 세계 최초의 핵추진 쇄빙선인 레닌호를 시작으로 모두 4척의 핵추진 쇄빙선을 선보이며 북극해 천연자원 개발에 사용하고 있다.

미지의 땅에 대한 탐사는 곧 먹고사는 문제와 연결된다. ‘북극에 전 세계 원유의 13%, 천연가스의 30%가량이 매장돼 있고 북극항로를 통해 현재 동아시아~북유럽 운항 거리를 30% 줄일 수 있다’니 러시아 등 주요 나라가 북극에 관심을 두는 건 당연하다.

우선 북극항로와 관련한 저자의 예언은 적중했다. 그는 이 책에서 ‘북극에서 운항될 원유 운반선, 천연가스 운반선 및 북극항로에 투입될 쇄빙컨테이너선 등 블루오션은 한국 조선업계 몫’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8월 러시아 선적 액화천연가스 수송선이 노르웨이에서 출항해 북극항로를 거쳐 충남 보령항에 19일 만에 도착했다. 북극항로 개척의 신기원이다. 선체에 쇄빙 기능을 갖춰 1.2ｍ 두께의 얼음을 깨고 운항할 수 있는 이 배는 한국산이다.

북극의 자원 확보를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황금을 찾아 서부로 향하던 골드러시에 견줘 ‘콜드러시’로 불리는 이 전쟁에서 꼭 필요한 무기가 우리나라 쇄빙연구선 1호인 아라온호에 이은 제2 쇄빙연구선이다.

정상도 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