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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志鬼(지귀:불 귀신)의 사랑 /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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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7-11-27 19:32:22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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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귀의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매서운 계절이 찾아왔다. 지귀의 사랑은 불귀신의 사랑을 뜻한다. ‘志鬼心中火(지귀의 마음속 불길이)/燒身變火神(자신의 몸을 불사르고 불귀신으로 변했다네)/流移滄海外(창해 밖으로 흘러 들어가)/不見不相親(보지도 말고 가까이하지도 말지어다)’. 이 가사는 불 귀신이 되어버린 지귀를 제압하는 일종의 부적용 노래이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지귀는 신라 활리역에 살았던 사람이다. 아름다운 선덕여왕의 모습을 흠모한 나머지 점점 몰골이 초췌해져 갔다. 여왕은 그 말을 듣고 지귀에게 “내일 영묘사에 분향하러 가니, 너는 그 절에서 나를 기다려라”고 했다. 이에 지귀는 이튿날 영묘사 탑 아래에서 여왕의 행차를 기다리다 잠이 들었다. 여왕이 절에 도착하여 분향하고 나니 지귀가 깊은 잠에 빠진 것을 보았다. 여왕은 팔찌를 벗어 지귀의 가슴 위에 두고 환궁했다. 지귀가 잠에서 깨어나 여왕의 팔찌가 가슴에 있는 것을 보고 그녀를 기다리지 못한 것을 한탄했다. 깊은 번민에 빠져 고뇌하다가 결국 마음의 불길이 치솟아 자신을 불살라버렸다. 지귀는 불귀신이 되어 건물들을 불태우며 나라를 혼란스럽게 했다. 이에 여왕은 주술사에게 명하여 지귀를 물리칠 가사를 짓게 했고, 그 가사를 문이나 벽에 붙여 지귀의 화재를 막았다고 한다’. 바로 서두의 노래는 불귀신이 되어버린 지귀에 대한 부적 가사이다.

요즘 지진에 이어 연일 화재가 발생하고 있다. 불 귀신의 사랑을 조심해야 할 계절이다. 불 귀신에 노출되어 불타버린 국보급 문화재 이야기는 결코 적잖다. 오래된 사건이기는 하나 일본의 국보급 사찰 호류지(法隆寺)에서 1949년 1월 엄동설한에 발생한 화재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호류지 금당 내에는 고구려 담징이 그렸다고 전하는 불보살을 그린 장엄벽화가 있다. 중국 돈황석굴 벽화에 필적하는 일본의 아름다운 고대 벽화로, 금당 내 동서남북 12 벽면에 걸쳐 그려져 있다. 화재는 이 금당 벽화를 모사하다가 전기방석 누전으로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부터 전해오는 역사 깊은 금당 벽화가 순식간에 화마에 휩싸여 버린 것이다. 이 대사건으로 인해 일본은 소화기를 사찰에 설치하는 계기가 되었고, 문화재 대상으로 소방훈련을 실시하게 되었다.

우리도 수십 년 전에 있었던 거센 화마를 잊을 수가 없다. 1984년에 전남 화순 쌍봉사에서 화재가 일어나 보물 제163호인 대웅전이 불타버렸다. 쌍봉사 대웅전은 일반 대웅전 건물과는 달리 삼층목탑 형식의 독특한 건물로 유명한 사례였다. 다행히 전각 내 목조불상은 화재를 면할 수 있었으나, 아쉽게도 대웅전은 화재로 말미암아 보물에서 해제되었다.

또한 1986년 12월에 발생한 김제 금산사에서 불이나 보물 제476호 대적광전 역시 화마에 휩싸였다. 다행히 금산사를 대표하는 국보 미륵전은 건물 옆에 소화기가 비치되어 있어서 신속한 진화작업으로 화마를 면할 수 있었다.

2005년의 양양산불은 공포의 불바다였다. 강원도 양양읍 화일리 야산에서 발화하였으나 강풍에 걷잡을 수 없이 번져 결국 양양 낙산사가 거의 전소된 대사건이었다. 보물 479호 범종은 고철 덩어리가 되어버렸다. 영적인 도량으로 알려진 홍련암을 비롯해 의상대와 보물 제1362호 건칠관음보살상 등 일부만이 겨우 보전할 수 있었다. 낙산사 화재로부터 3년 후 2008년 2월 설 연휴에 발생한 국보 제1호 숭례문의 화재 사건은 잊을 수가 없다.
지귀의 사랑, 얼마나 사랑하면 몸을 불태울까! 이처럼 고대부터 불에 대한 옛 사람들의 경계는 여러 형태로 표현해 왔다. 인근 통도사에 가면 영산전 처마 아래 기둥에 소금단지를 얹어두고 있다. 소금은 바다를 상징하여 화재에 취약한 목조건물에 소금단지를 둠으로써 불을 막고자 했던 것이다. 소위 상징적 소방시설이었다.

게다가 통도사 대광명전의 포벽 아래에 가로지른 횡목에는 둥근 원 안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적혀있다.‘吾家有一客(우리 집에 한 손님이 있는데)/定是海中人(바로 바다의 사람이라)/口呑天漲水(입으로 천창수(비)를 뿜어서)/能滅火精神(능히 불귀신을 죽이네)’라는 내용이다. 화재를 방지하는 화멸진언, 즉 부적이다.

그 외에도 목조건물 지붕에 얹는 평기와에 우물 ‘정(井)’자를 문양식으로 새긴 기와들을 볼 수 있다. 이것도 바로 화재에 대처한 물을 상징하는 모티브인 것이다.

얼마나 사랑하면 몸을 불태울까. 재난은 예기치 않게 급습한다. 지귀의 사랑을 조심해야 할 계절이다.

동아대 교수·인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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