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세상읽기] 노년의 미련과 후회 /김홍희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11-26 19:36:22
  •  |  본지 30면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대개 사람들은 40대 중반 전후로 신체적 변화를 급격히 겪는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건망증이 심해진다. 치매에 걸리거나 걸린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수도 없이 하게 된다. 아침에 아파트 문을 열고 나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차 앞까지 갔다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횟수가 는다. 집에 와서는 왜 다시 돌아왔는지, 또는 남겨둔 물건을 챙겨 내려가면서 돌아올 때 들고 온 물건을 두고 내려가는 자신을 확인하게 되면 거의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가게 된다. 이미 치매에 걸린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이때 쯤 하게 된다.

이쯤 되었을 때 최고의 위로는 똑똑하던 동료나 명석하던 친구가 나와 같은 증상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이다. 그러나 위로를 받는 것도 잠깐 건망증은 더 심해진다. 의사에게 물어봐도 뾰족한 수가 없다. 대개 알코올 때문이라거나 스트레스에 의한 것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더군다나 약도 없단다.

이러한 것들은 요즘 내가 겪고 있는 현상들이다. 나이에 따라 육체적 심리적 변화에 대한 조언이 적힌 교과서 같은 책들이 있다면 얼마나 위로가 될까. 내일이면 60이 되는 나 같은 멍청한 인간을 위한 선배들의 조언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 지 벌써 오래다.

오늘 아침 바쁜 일 때문에 공중목욕탕에서 간단히 샤워만 하고 서둘러 나왔더니, 아뿔싸! 구두닦이 아저씨가 내 구두에 구두약만 잔뜩 먹여 놓은 채, 다른 구두를 닦고 있었다. “벌써 나오셨어요?” 이러면서 커피 한 잔을 내놓으며 잠시만 기다리란다.

“제가 50년 전에는 좀 날렸는데, 이렇게 쪼그라들었습니다.”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한다. 어디서 어떻게 날렸냐고 물었더니 무슨 앨범 같은 책을 한 권 건네주면서 월남에서 좀 날렸다고 하신다. 그 앨범은 1966,67년 사이 월남에 파병되었던 백마부대 군인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인쇄된 앨범이었다.

“제가 철원에서 근무를 했었는데 제대 1주일 남겨 놓고 월남으로 파병되었어요. 그때는 좀 날렸죠. 월남서 뿐만 아니라 돌아와서도 좀 날렸는데….” 그러면서 “요즘은 성경을 필사해요. 한 번 하는데 7~8개월이 걸려요. 단번에 필사를 하는 게 아니라 구두를 닦아 가면서 하니까….” 그런데 벌써 6번 필사를 했고 이제 7번째 들어간단다.

혹시 사시면서 후회되시는 일은 없으시냐고 물어봤더니 구두닦이 아저씨는 자신이 미션 스쿨인 대광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대개의 친구는 성직자로 많이 가고 자신은 무엇 하나 꿈대로 되는 일이 없어 여기까지 흘러오게 되었단다. 그러시면서 “나 자신을 알았어야만 했어”라며 자기 분수도 모르고 그릇의 크기도 모르면서 치뛰고 내리뛰다가 이 꼴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구두를 받아 신고 내려오면서 요즘 SNS에 떠도는 ‘나이 들면 후회하는 10가지’를 찾아보았다.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자신의 문제를 다룬 것과 사람들과의 관계에 무게를 둔 것 그리고 경제적 해결책에 대한 것으로 크게 대별 되었다. 자신의 문제를 다룬 부분에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문제를 걱정하면서 산 것과 나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닌 주위 사람들이 원하는 삶을 산 것에 대한 후회들이 많았다.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하는 삶을 살지 못한 것도 많은 후회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남녀의 역할에 너무 갇혀 산 것도 있었는데 아마도 여성들이 많이 한 후회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룬 부분에서는 젊어서부터 아내를 소중히 여기라는 것으로 나이 먹고 함께 여생을 보낼 최후의 사람은 아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한 것과 끔찍하게 싫어했던 직장을 그만두지 않은 것, 요즘의 나에게 해당하는 말이긴 하지만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이었는지를 깨닫지 못한 것도 꼽았다. 경제적인 문제와 관련해서는 저축과 보험의 중요성을 들었고 별로 돈이 들지 않는 산보나 등산, 수영 같은 취미를 부부가 함께 가지라는 조언이 유용했다. 그리고 좀 더 빨리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한 것과 모든 후회에 등장하는 것은 여행은 다리 떨릴 때 하지 말고 가슴 떨릴 때 하라는 것이었다. 저축을 해 가면서 여행을 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우리는 다만 추구하는 존재일 뿐. 걱정으로 걱정이 없어진다면 걱정이 없겠다는 티베트의 속담을 기억하며 다만 추구하라. 그렇지 않으면 미련과 후회만 가득한 노년을 맞게 될 것이니.

사진가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많이 본 뉴스 RSS
  •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스포츠

6·13 선거쟁점 지상토론
기장 해수담수화시설
주목 이 공약
여성 등 소외계층 분야 정책
강동수의 세설사설 [전체보기]
‘토지’에서 부산의 문화예술을 떠올리다
기내식과 문어발, 그리고 ‘총수님’의 갑질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북항에 부산오페라하우스를 지어야 한다면
도심, 걸을 수 있어야 빛나는 곳
기고 [전체보기]
걷기, 100세 건강 지켜줄 최고 처방전 /이용성
부울경 통합관광기구 만들자 /김건수
기자수첩 [전체보기]
부동산 이젠 출구전략을 /민건태
기초의원 자질 키우자 /김봉기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워라밸·스라밸, 삶의 균형은 있는가
외교는 전쟁보다 어렵다
김정현 칼럼 [전체보기]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
납세자로서의 유권자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부산·대구 너무 다른 식수대응 /조민희
오 시장, 反徐(반서) 프레임 넘어라 /이선정
도청도설 [전체보기]
보물선
고대 바이러스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작지만 매력 많은 동네책방
설악당 무산 스님의 원적(圓寂)
박무성 칼럼 [전체보기]
공직자의 침묵
부산 여당의 과적 운항
박창희 칼럼 [전체보기]
서부산 신도시, 누구를 위한 것인가
高手의 질문법
사설 [전체보기]
세계수산대학 유치 난관 뚫고 반드시 성사 시켜야
문 정부에 보다 본질적 개혁 요구한 지식인 선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변화의 필요성과 소득주도 성장
고독사 문제의 근원적 해법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공룡 기무사의 월권 불감증
부울경 상생, 신기루가 안 되려면
특별기고 [전체보기]
갑질과 배려- 6년간의 부산상의 회장직을 떠나며 /조성제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