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떼러 갔다 혹 붙여 온다’. 부담을 덜려다 일을 더 떠맡게 된 경우를 비유하는 속담이다. 전래 동화 ‘혹부리영감’에서 유래했다. 마음씨 착한 혹부리영감이 기지를 부려 혹도 떼고 보물도 얻는다는 이야기가 이 동화의 전반부. 기지는 구성진 노래가 혹에서 나온다는 거짓말이다. 이에 속은 도깨비는 영감에게 보물을 주고 혹을 산다. 후반부는 한 동네에 사는 욕심쟁이 혹부리영감이 같은 방법으로 혹을 떼고 횡재하려다 도깨비로부터 매타작과 함께 혹만 하나 더 붙여 온다는 것. 두 상황이 대비를 이뤄 흥미를 돋운다.

그런데 이 동화의 산실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일본이다. 가마쿠라시대 초기 간행된 ‘우치습유물어’에 실려 전승된 일본 10대 동화의 하나다.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잡혀갔다 돌아온 조선 중기의 문신 강항은 저서 ‘수은집’에서 이 이야기가 일본에서 유명하다고 전했다. 그런 것을 국치년인 1910년 다카하시 도루가 ‘조선물어집’이란 제목의 동화책에 우리 고유의 이야기인 것처럼 수록했다. 조선과 일본은 하나라는 내선일체 의식을 우리에게 주입하기 위해서였다. 눈여겨 볼 만한 대목은, 내선일체란 허상을 실체화하려고 끌어댄 자료가 ‘거짓말’을 테마로 한 동화란 점이다.

같은 테마의 서양 동화 중에선 ‘피노키오’가 가장 유명하다. 착한 목수 제페토가 나무를 깎아 만든 피노키오가 온갖 모험을 하다 사람이 된다는 내용이다. 원작은 이탈리아의 극작가 카를로 로렌치니가 1883년 소년신문에 연재한 ‘피노키오의 모험’. 당초 15회 분량으로 구성됐는데, 편집자의 요청을 받은 작가가 푸른 요정을 등장시켜 목이 매달려 죽은 피노키오를 살려낸 뒤 36회 분량으로 이야기를 늘렸다. 1940년 월트 디즈니가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했다. 피노키오의 코가 거짓말을 할수록 길어지다 가지까지 생겨나 새들이 날아와 둥지를 트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판타지 동화의 고전 ‘피노키오’가 영화·연극으로 재탄생될 전망이다. 최근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영국과 미국에서 유력 제작자와 연출자들이 피노키오를 영화·연극으로 만들기 위해 리메이크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21세기로 귀환하는 피노키오에게선 인간과 인공지능(AI)의 관계 문제를 고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처럼 피노키오를 AI의 원형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피노키오가 어떻게 그려질지 자못 궁금하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