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물의 삶을 되짚어 보기에 묘지만한 곳도 없을 것 같다. 조선시대 무(武)를 대표하는 인물로 손꼽히는 이순신의 삶을 음미해보려고 아산의 ‘충무공묘’로 향한다. 묘지는 연꽃 핀 연못을 지나 안쪽 깊숙이 들어서 있다. 평일이라 그런지 밖의 소음이 새어들지 않는 묘소는 정적에 잠겨 있다. 아무도 없는 묘소를 돌아보며 무인으로서의 그의 삶을 떠올려 본다.

조상 대대로 유학을 업으로 삼아 문반으로 출사했는데, 왜 굳이 그에 이르러 처음으로 무반으로 들어섰을까. 어렸을 때부터 좋아해 장성해서도 잘하고, ‘난중일기’에도 끊임없이 등장하는 활쏘기 때문일까. 그의 뒤를 잇는 후손들의 출사를 살펴보면 짐작 가는 바가 있다.

충무공의 대동보를 조사한 박진욱(남해유배지답사기 저자)에 의하면, 덕수 이씨 공진파 순신계 아래로, 8세손 10세손이 삼도수군통제사였고, 그 밖에 병마절도사 수군절도사 등 정3품 당상관 이상의 벼슬을 한 사람이 55명이나 되지만, 그 가운데 문반은 한 사람도 없다. 문반은 붕당에 편입될 수밖에 없지만, 무반은 붕당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생각해 본다. 그의 무인으로서의 삶 곧 무도(武韜 :도는 활집 또는 칼집이라는 뜻)의 길에서 가장 뼈아팠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장수로서의 지휘가 가로막히고 모함을 받아 투옥되어 고문을 당하고 참형 직전까지 갔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래서일까. 그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류성룡은 ‘징비록’에 그간의 사정을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파죽지세로 조선을 유린하던 왜적이 위로는 명의 원군에게 막히고, 아래로는 이순신의 수군에게 막히자, 풍신수길은 그 타개책을 소서행장에게 독촉한다. 정공법으로는 이순신을 당해내지 못할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소서행장은 첩자를 활용하는 방법을 쓴다.

상대의 틈을 노리는 ‘이간질’이나 ‘용간’은 중국의 ‘무경칠서’(육도, 삼략, 손자, 오자, 사마법, 울료자, 이위공문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보통은 상대방의 장수와 병사가 단결되어 있어 정공으로는 당해내지 못할 때, 그 사이에 틈을 내어 치기 위해 쓰는 수법이다. 그러나 틈은 다른 곳에도 있다. 장수와 장수 사이, 장수와 조정 사이, 조정의 권신과 권신 사이.

첩자 요시라를 보내 거짓 정보로 이순신의 수군을 함정에 빠뜨리려 한 소서행장, 거짓 정보에 놀아난 원균 등과 조정의 권신, 이에 동조한 군주 사이에 난 틈서리에서, 이 간계를 감지하고 군사를 출동시키지 않은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에서 끌어내려져 투옥된다.

어이없는 것은 그렇게 이순신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앉은 원균에게 소서행장과 요시라는 똑같은 수법을 쓴 것이고, 더 어이없는 것은 원균이 그 간계에 그대로 빠져들어 간다는 것이다. 조정과 군주의 명령을 듣지 않은 이순신이 어떻게 되었는지, 거기에 앞장선 자신이 빤히 보았기 때문이다. 원균은 도원수 권율의 독촉에 핑계도 대지 못하고 70여 척의 배와 400여 명의 장수 및 군사와 함께 그 함정에 빠져들어 사라져 간다.

이순신이 사형에서 벗어나는 데 가장 적극적으로 변호한 인물은 판중추부사 정탁이다. 그는 조정의 대부분의 권신과 달리 병법에까지 정통했는데, 이순신이 처한 상황을 멀리서도 정확히 꿰뚫고 있었던 듯하다. “군사상 기밀의 이롭고 해로운 것은 먼 곳에서는 미루어 헤아릴 수 없으니 그가 나가지 않은 것은 반드시 무슨 짐작이 있었을 것입니다”고 말한 것을 보면.

병법서에서 빠짐없이 강조되는 것이 장수의 지휘권에 대한 군주의 불간섭과 장수의 재량권이다. 군주가 전투 현장에 함께 있건 멀리 떨어져 있건.

이순신이 복귀하여 전투를 지휘하다 전사할 때도 그의 활집에는 아직 많은 화살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한나라 장량에게 황석공이 주었다는 ‘삼략’의 상략에는 ‘나라를 어지럽히는 원천’으로 벼슬아치가 패거리를 지어 공정함을 등지고 사리사욕만 앞세워 어질고 뛰어난 사람을 억누르고 내치는 것을 들었다. 붕당을 짓고 당쟁을 일삼으며 인재를 죽이고 나라를 망가뜨리는 권신들을 보며 충무공의 후손들은 어떤 생각을 했겠는가.

그러나 문반이 패거리를 지어 이전투구하는 상황에서 무반이라고 별수 있었을까. 그래서 지금도 상무 정신이 희박한 정치 군인이 득세하는 것을, 방산비리가 뉴스거리가 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나마 현역 군인이 소령시절에 접하게 된 무경칠서를 10여 년이 지난 대령(현 합동참모본부 재직)이 될 때까지 공부하여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것을 보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무경은 단순한 병법서나 처세술에의 활용을 넘어, 오늘날의 국리민복과 전시작전권이나 자주국방을 음미할 혜안이 담겨 있다고 보이기에.

도보여행가·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