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유가 오르는 모습이 심상치 않다.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경우 지난 8월 말 배럴당 45달러에서 움직이더니 벌써 55~57달러 선까지 왔다. 당연히 국내 휘발유 가격도 상승세다. 무려 15주 연속 올라 ℓ당 전국 평균 1517원까지 왔다. 불과 4~5개월 전까지 유가는 더 오를 일이 없다고들 했는데 이제 배럴당 70달러(WTI 기준)까지 전망하는 기관이 나온 상황이다. 왜 갑자기 유가가 튀어 오른 건가. 최근 두 달 사이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유가 상승의 핵심은 역시 사우디아라비아이다. 산유국 카르텔인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좌장 사우디는 연초부터 감산을 주도하면서 무너진 유가를 끌어올렸다. 게다가 현재 하루 180만 배럴 감산을 내년 연말까지 이어가자고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이달 말 최종 결정되지만 감산 연장은 기정사실로 되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엔 연일 외신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제1 왕위계승자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도 빼놓을 수 없다. 현재 반부패위원회를 통해 전·현직 장관과 왕자들을 대거 숙청하고 있는 그는 자신의 명예를 걸고 유가를 지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빈 살만 왕세자 입장에서 유가는 굉장히 중요하다. 개혁 과정에서 유가가 급락해 사우디가 다시 경제적으로 힘들어질 경우 본인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장에선 “빈 살만의 숙청이 끝날 때까지 유가는 무조건 오를 것”이라는 말도 돌고 있다.
사우디발(發) 국제유가 상승 재료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역사상 앙숙 관계인 사우디와 이란이 다시 충돌 조짐을 보이고 있다. 레바논에서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 모습이 나오고 있는데 사우디는 레바논 체류 중인 자국민들에게 “친이란 무장조직 헤즈볼라의 공격 표적이 될 수 있어 빨리 레바논을 탈출하라”는 긴급 경보도 발령했다.
2015년 예멘에서 펼쳐진 대리전과 유사한 흐름이다. 특히, 정치공학적으로 봤을 때 빈 살만 입장에선 이란과의 갈등이 본인에겐 필요한 측면도 많다. 사우디와 이란 두 나라의 산유량은 하루 1400만 배럴로 OPEC 산유량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이 거대한 2개의 산유국이 충돌한다면 엄청난 공급 차질이 나올 수밖에 없다.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위험’이란 유가 상승의 전형적 패턴이다. 여기에 수급도 한몫한다. 덩치 큰 헤지펀드가 속속 매수포지션을 잡고 원유시장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이 대목에서 그간 국제유가 관련 보도를 추적해온 독자들은 이런 질문을 던질 것이다. “아니, 미국 셰일오일은 지금 뭐 하고 있어?”라고. 실제 최근 미국 셰일오일 이야기가 자취를 감춰버렸다. 불과 6개월 전까지만 해도 셰일오일 때문에 유가는 배럴당 50달러 위로 갈 수 없고, 미국 셰일업계가 엄청난 기술개발과 원가절감을 통해 손익 분기점을 45달러로 낮췄다는 보도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엔 전혀 다른 내용도 많다. 막상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해보니 채굴 비용이 오히려 올라가고 있고, 투자도 급감했다고 한다. 투자 규모가 커지면 산유국들이 유가를 갑자기 떨어뜨려 셰일회사 부도가 속출하는 일이 속출하자 트라우마가 생겼고, 결국 셰일업체에 대해 투자자들이 지갑을 닫았다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주도권이 이미 셰일업계에서 산유국으로 넘어갔다는 분석도 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국제유가 상승은 우리에게 뜻밖의 ‘나비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바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를 비롯한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의 ‘긴축정책 강화’이다. 쉽게 말해 금리 인상 속도와 폭이 빠르게 높아지고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유가 상승은 결국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간 중앙은행들이 왜 이렇게 긴축에 소극적이었나. 인플레가 나오지 않아서 그랬다. 그런데 유가가 본격 상승하면 모든 물가 관련 지표는 튀어 올라 본격 인플레 구간에 진입하고, 결국 초고속 금리 인상의 명분이 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유가가 오르면 한국경제 수출에 호재라고 하지만 현시점에서 추세적 금리 인상은 내수에 직격탄이다. 주식도, 부동산에도 악재이다. 빈 살만의 숙청이 유가 상승으로, 나아가 우리 김 부장을 하우스 푸어로 몰아넣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겨울이다. 우리 한국은행도 빠르면 연내 금리를 올릴 수 있다고 한다. 부디 국제유가 상승이 이쯤에서 멈춰 주기를 진정으로 바랄 뿐이다.
경제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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