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둘레 길의 음악 소리. 집과 직장이 그 자락에 있다는 이점에, 손쉽게 금정산 둘레 길을 도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런데 산길을 걷다 보면 스마트폰이나 라디오 볼륨을 한껏 높여서 음악을 즐기는 분이 의외로 많다. 산행길에 음악을 벗 삼는 것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다만, 그들이 즐기는 그 음악이 남에게는 소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하는 것 같다. 볼륨을 줄여 달라 부탁하지만, 열에 아홉은 “재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들은 “내 음악을 내가 즐기는데 네가 왜?”라는 태도이다. 소리를 낮추어 달라는 것이 예의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마트에 가면 값싸고 성능 좋은 이어폰이 있다는 평범한 정보에는 어두운 것 같다.
# 식당의 스마트 폰. 음식점에서 아이들이 이리저리 뛰는 장면은 보기에도 아찔하다. 일부 부모는 이런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주고 좋아하는 게임을 하게 하거나 TV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한다. 문제는 스마트 폰의 질 낮은 소리이다.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은 경우에, 식당 안에 있는 주변 사람들은 원하지도 않은 게임과 TV 소리를 고스란히 듣고 있어야 한다. 그런 부모에게 스마트 폰 소리를 낮추어 달라고 하면, 역시 “재수 없다”는 표정이다.
# 대학가의 쓰레기. 부산에서 가장 큰 대학가 주변은 항상 활기가 넘쳐난다. 알다시피 한국의 대학가는 웬만한 시내 중심가 못지않은 유흥가이다. 주로 대학생들과 중·고교생들이 이용하는 대학가는 저녁 시간만 넘어가면 쓰레기 천지로 변한다. 다른 사람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길담(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행위)’이 출몰한다. 지성의 전당이니 하는 낡은 구호로 지금의 젊은이들을 재단할 생각은 없다. 다만, 자신이 마신 음료 잔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게으름은 어디서 유래된 것인지. 복잡한 거리에서 자신의 기호를 충족(담배)하는 대인배(?)의 풍모에도 경의를 표하고 싶다. ‘젊음의 거리’는 ‘쓰레기와 담배꽁초’로 가득 차 있는 곳에 다름 아니다.
# 도시철도의 아귀다툼. 도시철도 노약자석은 말 그대로 노인과 신체적 약자를 위한 좌석이다. 하지만, 도시철도를 이용하는 많은 노인은 노약자석이 ‘노인’만을 위한 좌석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 이를테면 임신을 했거나, 몸이 좋지 못해서 노약자석을 이용했다가 봉변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회자된다. 심지어는 노인들끼리 크고 작은 다툼도 있는 모양이다. “몇 년생이냐”를 두고 심한 노선 투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지난여름 노포동역에서 본 장면. 한 건장해 보이는 노인이 등산을 다녀오다가 무임승차권을 받기가 귀찮아서인지 그냥 요금 게이트를 사뿐히 타 넘었다. 그리고, 그는 노약자석에 누웠다.
# 마트 근처의 편의(便宜) 주차. 또 필자의 경험을 가져와야 하겠다. 사는 아파트 근처에 대형 마트가 있다. 베란다에서도 보이는 넓은 마트주차장은 아주 혼잡한 토요일 오후를 제외하고는 늘 여유 있어 보인다. 마트 앞 2차선 도로는 사정이 다르다. 도로 한 차선은 항상 주차장이 된다. 학교를 따라 이사 온 지 3년이 지났건만, 그 차선에 불법주차를 하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일부 합리적 선택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편의에 도로가 희생당하는 것이다. 마트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보다는 시간과 다리품을 덜 팔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주차장을 이용하는 이는 멍청하거나 계산에 약한 사람이 된다.
아주 어릴 때부터 들어오던 ‘무슨 무슨-지국(之國)’이라는 담론을 반복할 생각은 없다. 자세한 계보학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예전의 우리는 염치와 배려를 무척 소중하게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러한 사회적 예(禮)는, 오늘날 외려 엉터리 자부심의 버팀목으로 작동하는 것 같다. 지금은 남보다는 자신을 앞에 놓는 사회적 무례(無禮)가 더욱더 횡행하는 것 같다. 일상적 삶에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염치와 배려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하지 않으면서도, 과거의 흔적을 통해 오늘의 나를 위안하는 태도로 보인다. 노인공경과 관련한 자의적 담론이 좋은 본보기일 것이다.
일방만 남아 있다. 예전의 예는 사라지고, 새로운 예는 나타나지 않은 상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나만 있으면 된다. 품격은 GDP(국내총생산)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염치와 배려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중언부언하고 싶다.
부산외대 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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