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을 마치는 시기가 되자 아들은 전문과목을 선택해야 할 갈림길에 섰다. “사업 잘하는 사람들은 자기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여유롭게 사는데 아버지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요?” 외과의사 생활이 재미있냐는 아들의 질문에 잠시 주춤거렸다. 질문 속에 자신도 아버지의 길을 꼭 따라 가야 할까 하는 물음표도 찍혀 있었다. 아비는 성격상 그러했던 것이고 고생은 했으나 많은 것을 이루어 놓았으니 그 업을 이어받아 지역사회에 더 큰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우리 지역에 성황을 이루는 중소병원이 많다. 이들 병원을 살펴보면 병원장의 탁월한 능력이 눈에 띈다. 의사로서 쌓은 명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거듭하며 진료 플랫폼을 확장하거나 자신의 진료영역을 전문화하여 성공한 사례가 많다. 소위 말하는 ‘강소병원’이다.

지역의 강소병원에서 적은 비용에 신속한 전문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은 환자들에겐 큰 위안이 된다. 원스톱진료로 하루 만에 웬만한 검사를 다 하고 당일에 검사결과를 볼 수 있어 진단과 치료도 신속하다. 직원들의 친절도가 높고 숙련도도 높아서 수준 있는 의료서비스가 가능하다. 환자와 의사는 오랜 기간에 걸친 끈끈한 친분으로 인간적인 대화가 가능하니 환자의 불안한 마음을 다독일 수도 있다.

지역의 강소병원이 허리를 받쳐야 의료전달체계에 제대로 된 길도 만들어진다. 정부는 2011년부터 의료서비스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일환으로 중소병원을 육성하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전문병원 제도를 운용해 왔다. 3년마다 엄격한 심사를 통하여 전문 병원으로 지정 운영하고 있다. 이들 전문병원에서는 다른 병원이 잘 하지 않는 틈새 분야를 공략해서 높은 성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필자의 병원도 부산 경남 최초로 변실금 환자에서 천수신경 자극술을 성공하는 등 특정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진료를 하고 있다.

외과의 중요성은 모두가 공감하지만 의학도에게 인기를 끌지 못하는 이유는 돈은 안 되면서 힘들고 리스크가 크다는 인식 때문이다. 최근 해마다 배출되는 외과의사 수가 급격히 떨어졌다. 이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이루게 되어 환자들에 큰 피해가 예견된다. 인식에 대한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정책을 통한 의료전달체계 개선이나 적정수가 보장을 통하여 외과 의사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완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중소병원의 인적 자원에 대한 지원책이나 불가피한 의료사고 발생 시 구제방안 등도 논의되면 좋겠다.

“아들아. 나는 내 생활이 좋다. 외과의사로서의 내 삶을 후회하지 않으며 내가 이룬 성과가 스스로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아들에게 외과의사도 칭찬을 받으며 여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말을 전하려니 뭔가 어색하기만 하다. 변변한 휴가도 없이 응급상황이면 밤낮으로 불려 다니던 아비의 뒷모습을 어린 시절부터 지켜본 아들은 자신도 비슷한 길을 따라야 할 것으로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을 것이다. 믿음직스럽다는 이유만으로 자식에게 어려운 짐을 떠넘기고 좀 편하게 지내려 했던 것은 아닌지 얄팍한 심정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럽고 미안하기 짝이 없다. 아비는 가진 것 없이 시작한 탓에 치열한 삶을 살아왔으니 이제 와서 생활방식을 바꿀 수도 없을 듯하다. 힘들어서 못 해 먹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내 천직이거니 생각했다. 많은 사람을 살려냈고 또 보람찬 기억과 추억도 많다. 성공했다는 소리도 듣는다. “아들아, 그래도 외과의사 생활 한번 해볼 만하단다. 외과란 보람과 성취감으로 사는 직업이니까.”

부산항운병원 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