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유럽의 아이슬란드가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에 진출했다는 기사를 봤을 때 신기한 게 하나 있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나라인 줄 알았는데 인구가 33만9000여 명에 불과했다. 부산의 기초지자체 인구와 비교했더니 사하구보다 조금 많고 부산진구보다 약간 모자란다. 그런데도 13억 인구의 중국마저 못한 일을 해냈으니 세계 축구계가 기적이라 불러도 딱히 반박할 구석이 없다.

그러고 보니 부산은 인구 면에서 꽤 큰 편에 속한다. 350만여 명이나 거주하는 도시는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다. 전체 인구가 부산보다 적은 나라도 수두룩하다. 사람 머리 수가 도시의 질을 담보하는 직접 요소는 아니겠지만 인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발전 가능성도 높음을 의미한다. 사회 인프라 측면에서도 부산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어느 도시에 비해 그다지 뒤지는 게 없다. 시민들이 여기에 산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져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부산의 기본 체질이 이렇게 탄탄하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은 능력을 갖춘 지도자다. 1995년 지방자지체 부활 이후 민선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전보다 더 높아졌다. 미래를 생각해도 그렇다. 부산은 지금 명실상부한 국제도시로의 도약을 노리고 있다. 이런 흐름을 이끌 지도자의 중요성은 두말하면 입이 아플 지경이다.

내년 지방선거가 눈앞으로 다가오자 벌써 여야 인사들의 발 빠른 움직임이 눈에 띄고 있다. 지금부터는 서서히 분위기를 띄울 시기인지라 자천타천으로 많은 사람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이번 시장선거에 특히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문재인 정권 출범 후 처음으로 치러진다는 데 있다. 따라서 대선 승리의 기세를 부산에서도 이어가려는 더불어민주당과 이를 저지하려는 자유한국당은 이제 피 말리는 공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여기에다 바른정당과 국민의당도 결전의지를 불태우는 마당이다.

싸움판이 커지면 당사자들이야 애간장이 타겠지만 관전자는 지켜보는 재미가 커진다. 박빙의 승부 혹은 막판 뒤집기가 예상된다함은 역으로 ‘흥행이 보장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더라도 적어도 잔칫날까지는 들뜬 분위기가 이어지게 마련이다. 지방선거 역시 유권자의 관심이 있어야만 축제의 장이 펼쳐진다.

우선은 한국당이 현직 시장을 재신임해줄지 아닌지가 궁금해진다. 만약 의외의 인물이 공천된다면 그가 누굴지도 촉각이 곤두세워지는 부분이다. 집권 여당인 민주당이 내밀 패도 초미의 관심사다. 일부 당사자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현직 국회의원이나 장관 출마설, 청와대 핵심인사 차출설 등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은 이번에는 꼭 부산시장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는 현 정부의 욕망을 대변해준다. 여기에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독자후보를 낼지 아니면 연대를 통해 통합후보를 낙점할지에도 시선이 쏠린다.

유권자의 처지에서는 시장선거에 누가 나오더라도 호불호가 있게 마련이다. 또 지지정당 후보를 무조건 밀어줄 개연성도 충분하다. 그러나 최근의 선거 경향을 보면 변화가 뚜렷하다. 지난해 4·13 총선에서는 여당 텃밭이라던 부산에서 5명의 민주당 의원이 당선됐다. 게다가 올해 대선에서 문 대통령의 부산 득표율(38.7%)이 한국당 홍준표 후보(32.0%)를 앞질렀다. ‘깃발만 꽂아도 ○○당 후보가 뽑힌다’라는 말은 이제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셈이다.

당연히 내년 6월 시장선거에서도 출사표를 던지는 이는 제대로 된 인물이어야 한다. 여야는 그 자리에 꼭 있어야 할 사람, 부산의 무궁한 잠재력을 더 키울 수 있는 사람이 출발선에 서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려면 여야는 시장 후보 결정을 내부정쟁의 대상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또 유권자 반응을 떠보려 검증조차 안 된 사람들의 이름을 ‘숨겨놓은 카드’라며 슬쩍 언론에 흘려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추태도 당장 그만둬야 한다.

출마 희망 후보자들 역시 스스로 그릇이 되지 않는다 느낀다면 깨끗하게 그 뜻을 접는 게 옳다. 시장 후보로 나선다는 이가 도시 발전 방향이나 미래 청사진 등에 대한 철학조차 없어 권력욕에만 급급한다면 이는 350만 부산시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누구는 ‘최악이 싫어 차악을 선택하는 게 선거’라는 말을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 선거 형태를 보면 충분히 수긍이 갈 만한 문구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자질 미달자끼리의 저열한 싸움은 그동안 신물나게 봐왔다. 희망하건대 내년 시장선거 때는 여야가 천거한 출중한 인물 간 선의의 경쟁이 벌어졌으면 한다. 그래서 당선자 못지 않게 훌륭한 사람인데도 이번에 기회를 주지 못해 안타깝다는 유권자의 진심이 낙선자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부산시장은 책임과 권한이 막중한 지위다. 뒤집어 말해보자. 부산시장은 아무나 해서는 되는 자리가 결코 아니다.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