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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칼럼] 석유, 피스타치오, 사프란, 그리고 詩

이란은 시의 나라 … 차례상에 코란 대신 시집 올리는 집도

그들을 대표하는 특산품 많지만 시를 최고의 선물로 꼽아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11-02 19:32:25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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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이란을 다녀왔다.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으로 테헤란과 시라즈에서 대학생들, 그리고 시인들과 시낭송회를 갖고 양국의 시문학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특히 한국 시인들의 시가 이란어 시선집으로 출간되고, 이란 시인들의 시가 한국어 시선집으로 동시에 출간된 것을 기념하기도 하는 자리여서 이란 방문의 의미가 컸다.
이란은 시의 나라였다. 이란의 시인들은 주저함이 없이 “우리는 1100년의 시의 역사를 갖고 있어요. 우리의 붉은 피 속에는 시와 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들은 13세기 신비파 시인 루미, 사디, 14세기 대시인 하피즈와 같은 시인들을 정중하게 섬겼고, 자랑스러워했다. 집마다 사디와 하피즈의 시집을 소장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내가 머물렀던 숙소에도 숙박객들을 위해 코란과 함께 하피즈의 시집을 갖추어 두고 있었다.

전해 들은 얘기로는 이란인들이 윗대의 조상들을 위한 차례상을 차릴 때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 행운과 생기를 가져다주는 거울, 마늘, 한 달가량 기른 밀의 싹, 재물을 모을 운수를 가져다준다는 금붕어 등을 올리는데,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코란 경전 대신 하피즈의 시집을 올린다고 했다. 덕담하듯 하피즈의 시를 한자리에서 읽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하피즈의 영묘를 방문했을 때 하피즈의 시편들을 이용해 미래의 점을 치거나 하피즈의 무덤 위에 손을 얹은 채 그의 시를 나직하게 암송하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이란 국민들에게 한국은 잘 알려져 있었다.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를 매우 좋아했다. 테헤란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젊은 대학생이 상당히 많았고, 그들은 한국어 구사에 능수능란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화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란 사람들은 한국을 호칭할 때마다 ‘산업 국가’라는 수식어를 자주 사용했다. 그들에게 한국은 아주 발달한 국가였다. 테헤란 시내 곳곳에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지점들이 들어서 있었고 시내를 오가는 차량 속에서 현대차와 기아차를 목격할 수 있었으니 이란인들이 한국을 최고의 산업국가라고 지칭하는 게 어렵지 않게 이해되었다.

테헤란의 한 문화원에서 열렸던 시낭송회에 참석하고 느꼈던 점을 좀 얘기해야겠다. 매주 화요일 저녁에 갖는 시낭송회 행사였다. 오후 6시경부터 시작된 행사는 2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시인이면서 문학평론가인 두 명의 진행자가 무대 한쪽에 테이블을 놓고 착석해서 시 낭송을 할 시인들을 소개했고, 시 낭송이 끝나면 곧바로 한마디씩의 평가의 말을 보탰다. 약간의 우스갯소리를 동반한 우호적인 칭찬을 보탰으므로 객석에서 웃음이 연신 터져 나왔다.

자신들이 직접 창작한 시를 낭송하는 이란인들의 목소리는 열정적이었다. 대중 연설가 같은 목소리로 시를 낭송하는 이도 있었고, 바닥에 떨어져 뒹구는 가을 낙엽과도 같은 탄식을 쏟아내는 이도 있었고, 비단과 같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시를 들려주는 이도 있었다. 한 젊은 시인이 시를 낭송한 후에 행사 진행자가 “막 낭송을 끝낸 저 낭송 시인은 직업이 토목기사여서 시를 저렇게 읽는답니다”라고 농담을 던져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참 특이했던 것은 시 낭송자가 무대에 올라 시를 낭송하는 중간 중간에 객석에서 탄성과 여러 종류의 감탄을 보내오는 것이었는데 가령 객석에서 “옳지!” “잘한다!” “좋아!” “얼씨구!” 이런 의미의 짧은 말들을 수시로 했다. 마치 판소리 고수가 창(唱)을 하는 사람에게 던지는 감탄사 같았다. 그러한 추임새로 인해 시낭송회장은 한결 흥으로 끌어올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많은 낭송자가 가잘(ghazal)이라는 시 형식을 빌려서 시를 지었는데, 가잘이 시구(詩句)의 반복과 대구(對句)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그런지 그들의 시에서는 음악의 선율이 잘 느껴졌다.

‘부디/ 시를 써요/ ‘내 마음이 너무 울적해’/ 같은 말은 빼고/ 미소를/ 인사를/ 따뜻한 차를 맛보는 즐거움을/ 찬미하는 시를/ 오마르 하이얌의 4행시와 함께/ 공원에서 그네 타는 아이들 가까이서/ 웃음 지으면서도 걱정하는 엄마들 곁에서/ 시를/ 아이들이 더욱 까불대도록/ 시를// 어제 시인은 종이를 채웠지만/ 오늘은/ 다시 하얀 종이가 됐네요/ 밤새 말들이 달아났군요/ 서로 상냥하게 말하는 시를/ 파란 맑은 하늘 같은 시를/ 접힌 종이를 펴는 시를/ 농부가 부르면/ 가뭄이 들어도 밀 풍년이 드는 시를// 부디 써요/ 시를/ 사랑 노래를/ 이 나라에서 쓰지 못할 시를’.

이 시는 지아 모바헤드 시인이 쓴 것이다. 이 시에서 언급되고 있는 오마르 하이얌은 11세기 페르시아를 풍미했던 시인이자 천문학자, 수학자였다. 이란 국민들은 시를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의 내용이 이처럼 지대하다고 믿고 있었다. 시를 통해 미소가 생겨날 수 있고, 시를 통해 이 세계가 쾌청한 하늘이 될 수 있고, 시를 통해 접힌 마음을 펼 수 있고, 시를 통해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이란인들은 그들 국가의 대표적인 수출품인 석유, 피스타치오, 노란빛 사프란과 함께 이란의 시를 수출할 만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대서양에서부터 아틀란티스 대륙까지 인류가 보낼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시(詩)이지요”라고 떳떳하게 말했다.

이란을 대표하는 매력은 많았다. 모스크, 석류, 페르시안 카펫, 홍차와 각설탕, 장미, 케밥, 대추야자 등등. 그러나 이란인들은 그들의 시를 일등품으로 서슴없이 추천했다.

고은 시인은 얼마 전 출간된 이란 시인들의 한국어 시선집 ‘미친 듯 푸른 하늘을 보았다’의 서문에서 “페르시아의 위대한 시가 다시 이 행성(行星) 위의 심금(心琴)을 울릴 그날이 오고 있기를 기대한다”라고 썼다. 나는 이번 이란 방문을 통해 그러한 날들의 도래가 목전에 있음을 확인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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