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스턴 처칠의 유명한 제스처가 있다. 두 손가락의 V(브이)자 동작이다. 2차 세계대전 중 승리의 표시로 나타냈다. 그 유래는 처칠이 아니라 600여 년 전 ‘백년전쟁’ 때로 전해진다. 당시 영국군의 활 공격에 고전하던 프랑스군은 적 궁술병을 붙잡으면 검지와 중지를 자르도록 명했다. 활을 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영국군이 대승하고 나서, 두 손가락이 건재하다는 의미로 V자를 그렸다는 이야기다.

손 동작은 외국에서 말이 통하지 않을 때 유용하다. 그러나 문화권과 국가에 따라 오해를 사기도 한다. V자 표시만 해도, 영국과 뉴질랜드 등에서는 손바닥을 안쪽으로 향하게 하면 욕이 된다. 과거 마가렛 대처 수상이 무심코 그리 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브라질 등 남미에서는 손가락으로 원 모양을 그리지 않는 게 좋다. 그 손짓이 음탕하고 상스러운 외설로 간주되어서다. 만일 여성에게 하면, 같이 자고 싶다는 뉘앙스라 뺨을 맞을 수 있다.

스포츠에도 손 제스처가 많이 쓰인다. 하이파이브, 엄지척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 한국시리즈를 제패한 KIA 타이거즈의 김기태 감독은 일명 ‘손가락 세리머니’로 이름나 있다. 서로 집게손가락을 부딪치는 것이다. ‘좀 없어 보인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상대에 대한 정성과 배려의 마음을 담은 것이다. 하나가 되자는 의미도 있다”는 김 감독의 지론이 마침내 우승의 결실을 이룬 셈이다.

정치인의 손 동작은 훌륭한 언변 이상의 효과를 내지만, 때로는 품위 없고 저속한 행태로 비난을 받거나 구설에 휩싸인다. 우리나라 국회의 국정감사장에서는 여야 의원들이 고성을 지르고 삿대질하는 게 예사다. 상대에게 손이나 손가락을 들어 얘기하면 그걸 이유로 또 싸운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국회 추태가 국민 지탄의 대상이 된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엊그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동 중 거리 시민들로부터 ‘손가락 욕설’을 받았다. 그가 탄 차량 옆에서 ‘가운뎃손가락’ 하나를 펴 보인 여성의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당시 자전거를 타던 이 여성은 대통령 차량을 따라가면서 그 손짓을 계속했다고 한다. 또 다른 시민은 트럼프 대통령 차량이 지나가자 그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아래로 내렸다는 것이다. 그 손짓이 갖는 의미를 볼 때 최악의 욕설이나 다름 없다. 평소 막말에다 손가락 욕설로 악명 높은 트럼프 대통령이고 보면, 자업자득이란 생각이 든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