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도르세의 역설’은 18세기 프랑스 정치이론가 콩도르세가 다수결 방식의 맹점을 지적한 논리다. 요지는 이렇다. 세 후보 중 여론 지지도에서 A가 B보다 높고, B는 C를 앞선다 치자. 그러면 A는 C보다 우세한 걸로 여기지만, 최다득표제로는 C가 A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 다수결 투표가 유권자 선호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걸 말해준다. 다수결이 만능일 수 없고, 오히려 함정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현행 선거제도는 이런 콩도르세의 역설을 떠올리게 한다. 소선거구제(1선거구 1인 선출)의 전형적 다수결 방식이라는 점에서다. 오직 1위만 살아남는 승자 독식이 판을 치고, 선거 때마다 ‘사표’가 양산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정당 득표율이 의석 비율과 거의 일치하기는커녕, 되레 큰 격차가 생기는 걸 수없이 봐왔다. 주권자의 표심, 즉 민의가 의석 비율에 수렴되지 않고 왜곡되는 셈이다.

근래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선거제도 개편이 화두를 이루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적폐 청산을 위한 정치개혁의 주요 과제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실, 이 과제는 그동안 여러 차례 제기돼 왔다. 가까이는 2015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전국 6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방안을 내놨지만, 의석 감소를 우려한 여당 측 반대로 흐지부지됐다. 이번에도 정당 간 이해관계가 첨예해 성사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하지만 지금처럼 불합리하고 시대 변화에 역행하는 선거방식을 마냥 유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2008년 총선 결과를 보자. 당시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은 정당 지지율이 37.5%였으나 국회 의석(299석)의 절반이 넘는 153석을 따냈다. 2012년 총선에서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지난해 총선 때는 득표율로 의석수를 가정할 경우 새누리당 101석, 더불어민주당 77석, 국민의당 80석, 정의당 22석 정도였다. 그런데 실제로는 새누리당 122석, 민주당 123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으로 나타났다.

지방선거에서는 더 심각하다. 특정 정당 싹쓸이와 지역주의 구도의 고착화를 낳았다. 2006년 광역의회 선거가 단적인 사례다. 그때 한나라당은 부산(42석) 경기도(108석) 서울(96석) 인천(30석) 대구(26석) 대전(16석)에서 전 의석을 휩쓸었다. 민주당도 광주의 16석 모두를 가져갔다. 유례를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결과였다. 특히 부산시의회는 그간 여섯 차례 지방선거에서 민자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특정 정당이 사실상 독점했다. 그 외 정당은 1998년 선거 때 자유민주연합의 단 1석뿐이었다. 공천이 곧 당선인 셈이다. 이런 체제에서는 1위 외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표는 계속 사표가 될 수밖에 없다.

일본 게이오대 사카이 도요타카 교수는 지난해 신간 ‘다수결을 의심한다’에서 이렇게 비판했다. “다수결 선거는 각 후보가 모든 유권자 대신 자신의 지지층 결집에 신경을 쏟음으로써 대립과 분열을 조장할 수 있다.” 어떻게든 1위로 당선되려다 보니, 일정 집단을 위한 정치로 전락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카이 교수는 그 대안 중 하나로 일명 ‘보르다 투표’, 즉 점수투표제를 소개했다. 유권자가 후보 등위를 매긴 뒤 각 등위의 점수를 합산해 뽑는 것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MVP(최우수선수)를 선정한 때 이 투표법을 시행한다. 투표권자들의 선호도를 정확히 반영하고 객관적 결과를 도출하려는 의도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1999년 시즌에는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1위 표를 많이 받았으나 이반 로드리게스보다 총점에서 뒤져 MVP를 놓쳤다.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도 지난해부터 MVP와 신인왕 선정을 이 방식으로 바꿨다.

결국, 선거제도 개편은 비례성을 대폭 강화하는 게 올바른 방향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혹은 독일의 정당명부식 비례제가 대표적 방안으로 꼽힌다. 정당이 받은 표만큼 의석을 나누니 공정하다. 사표가 훨씬 줄어들고 ‘표의 등가성’도 실현할 수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그 점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요구하고 있다. 소선거구제의 피해자 격인 국민의당과 정의당도 같은 입장이다. 그렇지만 걸림돌이 많다. 무엇보다 제1야당인 한국당이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민주당 측은 일단 긍정적인 모습이나, 내부 의견이 이해관계에 따라 갈리는 듯하다.

그제 촛불항쟁 1주년을 맞았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촛불 민심으로 대통령 탄핵과 정권 교체를 이뤘다. 하지만 광장 민심의 본질은 탄핵을 뛰어넘어 국가 대개혁을 이루는 데 있다. 그 개혁의 핵심은 정치분야다. 권력구조를 바꾸는 개헌 문제도 후진적인 선거제도 개편이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 지방분권과 지방자치가 실현되기 위해서도 불합리한 선거제도 개편은 필수 요소다.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