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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칼럼] 만남의 영도, 사랑의 부산

외지인 언제나 따뜻하게 품어주는 ‘관용의 도시’ 부산

영도다리 얽힌 희망의 스토리텔링 하나 더하면 어떨까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10-19 19:11:32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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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장이었다는 지난 추석 연휴 기간에 인천공항을 비롯한 국제선 공항이 출입국 하는 국민으로 몸살을 앓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사드(THAAD) 배치에 따른 한중관계 악화, 북한 핵위협으로 인한 안보 불안 등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내국인마저 해외 관광에 몰리는 것은 안타까운 현상이다.
제주는 가본 지 오래여서 사정을 알 수 없지만 다른 도시의 사정은 나름 체험했다. 당장 내가 사는 바닷가 도시만 해도 여름 피서철에 내 집에서 재울 만한 사이가 아니면 선뜻 초청하기가 어렵다. 펜션이라는 이름의 어정쩡한 숙소의 숙박비가 하룻밤에 몇십만 원이니 누가 내든 서로 부담스럽다. 게다가 바닷가의 신선함을 기대하고 찾는 식당은 천편일률적인 상차림에다 터무니없는 가격 때문에 불쾌한 기분으로 나오기 일쑤다. 국내 대부분 도시가 비슷한 실정이니 국제적 관광경쟁력은 기본적으로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정책의 문제도 있을 테고 개인적인 편견일 수도 있으니 조금 더 잘 아는 부산만 이야기하겠다.

지금 한창 열리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같은 볼거리가 없어도 부산을 자주 간다. 국제시장은 저절로 발길이 가고 뭐라도 하나 구매하게 된다. 내 양말 전부가 그렇게 산 것이다. 책방거리, 자갈치시장 등도 필수 코스다. 숙박비가 조금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잠은 반드시 해운대에서 잔다. 새벽 바다와 일출도 좋지만 동백섬의 맑은 아침 기운 속에 고운 최치원 시비를 보기 위해서다. 이유는 뚜렷하지, 순전히 개인적 취향이다. 관광 혹은 여행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취재를 위해 여러 나라, 수많은 유적지를 돌아다녔지만 마음이 허전하거나 몸뚱이가 지치면 부산이, 해운대가 생각나는 것과 같은.

앞에서 국제적 경쟁력 운운했지만 부산은 다른 경우인 듯싶다. 우선 가격을 표시하지 않은 식당은 아직 보지 못했다. 일부 호텔의 숙박비는 외국에 비해 높은 편이지만 대부분은 관광시즌이라고, 바닷가라고 특별히 가격을 부당하게 조정하지도 않는 것 같다. 시장마다 거리마다 볼거리 먹을거리가 다양하고 가격도 합리적이다. 상인들도 밝고 친절한 데다 바가지를 씌우려는 얄팍한 상술을 보이지 않는다. 뜸해진 중국 단체관광객의 자리를 개별적 외국인, 내국인이 어느 정도나마 대체하는 비결일 것이다.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 이야기이다.

부산은 한반도에서 아주 특별한 도시다. 반도의 남쪽 끝이자 바다로 다른 나라와 연결되는 창구가 되는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태생적 연(緣)이 원망스럽기도 한 일본과는 고대에는 문화를 전해주는 출발지이자 왜구의 발판으로, 힘을 기른 나라 왜(倭)나 일본과는 그들의 대륙 침략의 관문으로, 또 패전한 그들의 안전한 철수기지로. 한국전쟁에서는 대한민국을 지키는 교두보였고 자유를 찾아 피란 온 수많은 피란민을 끌어안아 제2의 고향, 마음의 고향이 되었다. 또한 전쟁이 끝난 뒤에는 이 나라를 먹여 살리고 재기하게 한 수출의 전진기지였으니 참으로 고맙고 공이 크다 아니할 수 없다.

물론 좁은 한반도에서 비슷한 사연 한두 개야 어느 도시에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산이 특별하다는 것에는 다른 까닭이 있다.

부산에서 먼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수많은 외국인에 대한 무심함(?)이다. 그가 어느 나라 사람이든 조금도 특별한 시선으로 대하지 않더라는 뜻이다. 민족, 피부색 따위는 아무런 관심 없이 그저 한 사람으로, 고객으로, 친구로 대하는 무심함. 특히 일본영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으로 인한 약간의 소란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 일본인을 대하는 것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으니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많이 수그러들었고, 모두가 스스로 자제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지역감정의 완전한 해소를 말하기는 아직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부산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역갈등의 기미를 찾을 수 없었다. 호남이든 충청이든 서울이든, 누구라도 부산에 가면 그저 한국 사람이고 이웃이고 친구로 편했다.

부산이야말로 지리적 특성으로 보자면 깊은 응어리를 품을 수 있는 도시였다. 지구상에서 가장 넓은 바다를 품어서인지 자비의 부처를 가장 깊이 사랑해서인지 참으로 너그러운, 그야말로 ‘관용과 포용’의 도시다. 태어나지 않았어도 고향 같고, 지치면 생각나고, 찾아가면 편안한 까닭이다.

이제 관광에서 이야기, 즉 스토리텔링의 의미와 가치는 누구나 알고 동감한다. 그런데 여러 나라 유적지를 찾아다니며 느낀 점은 한과 오기의 이야기에는 잠깐 분노는 해도 금세 잊히더라는 것이다. 굳이 불편한 기억을 간직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슬픔이 배경이어도 따뜻한 눈물, 설렘, 희망이 있으면 오래 기억에 남고 다시 찾고 싶어진다.

얼마 전 자갈치시장을 거쳐 영도다리 아래를 걷다가 문득 부산의 포용과 관용, 희망의 스토리텔링이 하나 떠올랐다. 명확한 근거 없이 그저 떠돌며 전해진 이야기라 해도 한국전쟁의 피란민 중에 영도다리 아래서 만나자는 막연한 약속으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만난 사람들이 아주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구나 그리운 사람에 대한 추억 하나는 간직하고 사는 삶이다. 설령 다시 그를 만날 수 없다 할지라도 그곳에서 그를 기리면 마음이라도 전해질 것 같은 장소 하나쯤 있다면 헛헛한 삶에 얼마나 큰 위안이 될까. 어떤 노랫말처럼 ‘영도다리 문간 옆’이든 ‘아래’든, 그런 그리움과 만남의 기약 장소로 맞춤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마음을 남기고 전하는 방법은 다양하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아나, 그런 간절한 그리움과 헛헛함으로 영도다리 아래를 걷다가 정말 그립던 사람을 만나게 되거나, 아름다운 인연이라도 맺어 영원한 사랑의 부산으로 기억하게 될지. ‘관용과 포용’의 근본은 오래전에 갖춰졌고, ‘만남의 영도’ ‘사랑의 부산’이라는 자리만 잘 깔면 민족, 피부색쯤은 아무 상관 없을 듯도 한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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