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원자력발전소 5·6호기 건설 영구중단 여부를 둘러싸고 찬반양론이 팽팽한 가운데 정부의 공론화 절차가 마무리 단계에 돌입했다. 이는 근본적으로 정부가 절차를 잘못 진행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왜냐하면 신고리5·6호기는 고리원자력발전소에 이미 8기나 되는 과다한 원전시설이 있어 그만 짓자는 것이지, 나라 전체의 에너지정책과는 처음부터 직접적인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신고리5·6호기 백지화가 마치 탈원전의 상징처럼 된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정부의 탈원전정책과 관계없이 부산 울산 경남 주민의 안전을 위해 이미 포화 상태인 고리원전에는 더는 증설해서는 안 될 것이며, 신고리5·6호기 건설은 즉시 중단해야 한다. 고리원전은 세계 최대의 발전용량, 반경 30㎞ 내 세계 최대의 인구(약 400만 명), 세계 최다의 원자력발전기(최다 다수 호기) 등 세계 3대 신기록을 수립하고 있다.
신고리5·6호기는 부울경 주민이 원전의 위험성을 더 깨달아 원전증설 반대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전에 서둘러 짓고서는 과다한 매몰 비용을 핑계로 이를 기정사실화하려 한 것을 알 수 있다. 2014년 2월 산업자원부는 우리가 모르게 사업 승인을 했고, 2016년 6월에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역시 몰래 건설허가를 했다. 당시 부산시민들이 신공항 가덕도 유치에 온통 매달려 있는 틈을 이용해 전격적으로 허가했다.
더욱이 원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은 건설 허가도 나기 전에 각종 공사발주와 기자재 구매 발주 등 이른바 사전공사를 감행했다. 이렇게 서둘러 밀어붙이다 보니 불과 1년도 안 된 올해 6월 벌써 공정률이 30% 가까이 되고, 이미 투입된 비용도 1조 5000억~2조 5000억 원에 이른다고 주장하면서 신고리5·6호기 건설 중단은 안 된다고 조직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정부가 일시중단 방침을 밝힌 순간에도 계속 공사를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기가 어려웠다. 공정률이 30%가 아니고 90%라도, 매몰 비용이 아무리 크더라도 수백만 주민의 생명과 재산에 치명적 피해를 줄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즉시 중단해야 할 것 아닌가? 외국에서는 공정률이 90%를 넘긴 것도, 심지어 준공된 것도 인근 주민의 안전을 위해 포기한 사례도 있다.
사실 신고리5·6호기는 처음부터 사업승인이나 허가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한수원도 공사를 서두르지 말아야 했다. 따라서 정부는 지금이라도 신고리5·6호기 건설을 영구중단(백지화)하고, 나아가 건설을 서둘러 추진해 기정사실화하려한 산업자원부·원자력안전위원회·한수원 관계자들을 엄중히 문책해야 한다.
정부가 본질을 잘못 파악하고 신고리5·6호기 백지화와 에너지 탈원전정책을 하나로 묶는 바람에 문제가 커지고 복잡해졌다. 탈원전에 대해서는 원전 찬성(진흥)론자들이 할 얘기(에너지 공급의 원활성, 관련 사업 내지 산업의 위축과 일자리 감소, 에너지 안보, 기술축적, 수출 지장 등)가 많다 보니 국민의 여론을 자기 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원전 찬성론자들은 대부분이 원전사업에 공통으로 이해관계가 걸려있어 서로 단합하기 쉬워 막강한 조직력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치세력까지 가세함으로써 신고리5·6호기 문제가 정치 쟁점화되고 있어 매우 걱정스럽다.
처음부터 신고리5·6호기는 인근 주민 안전문제에 한정해 정부가 바로 백지화시켰더라면 차라리 문제가 간단했을 것이다. 시기는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바로 영구중단하면 오히려 조용해지리라 본다. 안전을 위해 중단시킨다는 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어떤 분들은 그렇게 불안하면 비행기, 자동차 따위는 어떻게 타느냐고 한다. 그러나 원전사고는 교통사고, 건물붕괴, 교량붕괴, 산사태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위험을 안고 있다. 사고 위험성을 많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원전사고는 한 번 났다 하면 주변 반경 30㎞ 안은 완전히 버려진 땅이 되어 그만큼 국토 면적이 줄어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람이 거주할 수 없고 따라서 그 안의 모든 건물, 각종 시설물은 버려진 것이 되니 그 피해액은 상상 이상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원전이 털끝만큼의 위험이라도 있으면 피해야 할 것 아닌가? 신고리5·6호기 건설은 바로 중단해야 한다.
전 부산시 부시장·㈔인본사회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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