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영화의전당 두레라움홀에서 열린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작 기자회견장에서는 한 여성 감독의 소신 있는 발언이 화제를 모았다. 개막작인 ‘유리정원’을 만든 신수원 감독은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문화예술인을 분류했다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고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이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실 ‘유리정원’은 과거 정권 때라면 정부 측의 심기를 건드려 상영이 불가능할 수도 있었다. 동물적 욕망과 질서로 가득 찬 세상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주인공의 삶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4대강 이야기가 영화 속에 부분적으로 들어가 있는 까닭이다. 신 감독은 강의 흐름이 인위적으로 막히고 자본 때문에 자연이 훼손되는 문제들이 영화의 맥락에 맞닿아 있는 것으로 여겨 4대강을 내용에 포함시켰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때를 잘 만나 자신은 운 좋게 블랙리스트를 피해간 것 같다고 언급했다.

신 감독의 이 같은 발언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도무지 납득하기 힘든 잣대를 내세워 문화예술계의 목을 조른 보수 정권에 대한 준엄한 경고이기 때문이다. 과거 정부는 자신들의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거나 시국선언 등에 동참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문화예술인을 ‘손봐야 할 대상’으로 지목했다. 관련 단체에는 지원금을 줄이는 등의 방법으로 압박을 가했다. 게다가 특정 인물을 사장시키기 위해 인신공격도 모자라 음란물까지 조작하는 일까지 벌였으니 치졸하기가 그지없다.

부산국제영화제도 ‘다이빙 벨’ 상영의 사례에서 보듯 한때 외부 입김으로 인해 위상이 흔들릴 뻔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깨어 있는 영화인들의 노력과 시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빠른 시일 내 이런 아픈 상처를 치유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표현의 자유는 양보할 수 없는 절대 진리다. 이런 것이 제한된다면 그곳을 문명사회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가 표현의 자유라는 명제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느끼는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