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타는 순간 거의 아수라 지옥 속으로 뛰어든 느낌이었다. 세 명씩 몸을 비비고 앉는 것은 그렇다 해도 1970년대 우리 명절 때 완행열차처럼 통로까지 꽉 찬 사람들과 좋지 않는 냄새들,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였다. 어차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지만 그래서 무신경하려고 눈을 감고 부처처럼 견뎌보려 했다.

세상에 가장 견딜 수 없는 소음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계속 듣고 있는 것이란 것도 처음 깨달았다. 게다가 여기저기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나 연예 프로그램을 보는데 하나같이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창 쪽에 앉은 아가씨는 삐딱하니 창에 기대어 스마트폰 소리를 높여놓고, 맞은편 걸걸하게 떠드는 중년 사내들은 변발에 가까운 머리라 몽골족인지 만주족인지 헛갈린다. 처음엔 안내 방송이 없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안내방송이 없는 게 아니라 실내가 너무 시끄러워 방송이 들리지 않았다. 나는 이 상황을 15시간 이상이나 견뎌야 한다.

무작정 내몽골행을 감행한 나의 무모함이 문제였다. 내가 인천에서 배로 압록강 하구인 단동에 도착해 그저 막연하게 내몽골 쪽으로 방향을 정한 것이다. 장춘에 사는 지인이 내몽골 ‘하이나얼’이 가볼 만한 곳이고 장춘에서 거기 가는 기차가 있다는 정보만 가지고 뛰어든 것이다.

“워푸 메이요우.” 매표소에서 침대칸이 없다고 할 때 고생은 각오를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생각을 못했다. 사실 한두 마디밖에 하지 못하는 중국어 때문에 기차를 탈 때도 어려움이 있었다. 중국의 큰 역에는 출구가 엄청나게 많다. 내몽골행 출구를 찾을 수 없었다. 40분 여유 시간이 10분으로 좁혀지자 나는 50ｍ나 떨어진 입구까지 뛰어가 역무원에게 표를 보이고서야 그 기차의 종착역이 ‘하이나얼’이 아니라 ‘만주리’라는 것을 알았다.

견딤, 그래 버텨보는 수밖에 없다. 살다 보면 버텨야 할 시간이 있다. 더구나 나이가 들어가면 버텨야 할 시간이 많아진다. 아직은 마냥 버텨야 할 입장은 아니지만 인생 연습인 셈 치면 된다. 나는 자세를 꼿꼿하게 하고 장시간 견딜 각오를 다졌다. 그래도 거의 아수라 같은 그 공간에서 15시간 이상을 버티려면 뭔가가 있어야 했다. 그때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카잔차키스,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간다는 것은 새로운 여자를 만나는 것과 같은 설렘과 흥분을 가져준다고 했던 그였다. 그는 곧 닥칠 미지의 세계에 대해 가장 멋지다는 자기 주문을 걸었다. 나도 주문을 걸기 시작했다. 내몽골이 지상에서 가장 멋진 곳이라고. 주문 덕인지 견딜 만해졌다.

아침이 오고 목적지가 가까워졌다. 갑자기 목적지를 지나 만주리까지 가고 싶어졌다. 만주리에 가면 내몽골과 만주의 끝도 같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주리에 대해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이 유명한지 어느 정도 크기의 도시인지 모른다. 도시가 아니라 시골의 조그마한 마을일지도 모른다. 다만 만주리라는 곳은 ‘만주’라는 이름의 근원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다. 그런데 왜 만주리가 통칭 만주라는 동북삼성에 있지 않고 내몽골에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어쩌면 만주라는 이름 속에 내몽골도 포함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름만 있는 만주리행 기차는 그곳으로 가고 있다.

인생이 그렇듯 목적지는 알고 있으나 그 목적지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그곳은 추상과 관념의 세계이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거기 가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면서 거기로 가고 있는 기차를 타고 있는 것이다.

결국 만주리에 가지 못했다. 아니 가지를 않았다. 나는 만주리에 닿기 직전 하이나얼에 내렸다. 하이나얼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바람이 불었고 추웠다.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말씨 하나 통하지 않는 외롭고 적막한 곳이었다. 아마 만주리도 그와 비슷할 것이다. 저승이라는 곳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만주리가 종착역이니까 저승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역에 도달해버리면 모든 것이 끝나는 셈이니까 거기까지 갈 수는 없다. 그러나 저승까지 가보지는 못해도 저승의 맛이라 할까, 분위기 같은 것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죽어야 저승 맛을 보나?’ 이 반어적 속담은 죽지 않아도 저승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저승이라는 곳은 최소한 최악의 이승보다 못한 곳이라는 전제가 깔렸다. 그러나 세상에 살다 간 그 누구도 저승을 증명하지 못했다.

인간이 살면 반드시 가는 곳이지만 죽지 않고서는 도저히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아주 두려운 추상의 세계이다. 죽어서야 맛본다는 저승의 맛을 죽지 않고도 볼 수 있으니 세상에 이보다 더 값진 여행이 어디 있는가. 저승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저 조금은 쓸쓸하고 적막하고 견딜 만한 곳’이 아닐까.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