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와 맞닿은 예성강과 한강 어귀 교동도에서 개성 남쪽 판문점과 철원을 거쳐 동해안 고성 명호리까지 이어진 한반도의 허리. 길이 248㎞의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2㎞씩 펼쳐진 약 3억 평의 공간. 1953년 7월 정전협정이 체결된 뒤 60여 년간 인적을 벗어나 야생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비무장지대(DMZ)다. DMZ는 경이 그 자체다. 겉은 남북의 첨예한 군사적 대립이 응축된 경계이지만, 속살은 한반도 전체 생물종의 약 20%에 이르는 4800여 종이 서식하는 생태천국이어서다. 부여 금와왕 탄생신화의 주인공인 ‘금개구리’, 한국의 아네모네로 불리는 ‘홀아비바람꽃’, 물속에 산란탑을 쌓는 ‘어름치’, 꽃부리가 다섯 개로 갈라져 파란별 같은 ‘정향풀’ 등등. DMZ의 생물들은 모습뿐만 아니라 이름도 정겹다. 일촉즉발의 적대적 대치가 자연의 평화를 낳을 수 있다니 역설이 아닐 수 없다.

함민복 시인은 ‘꽃’이란 제목의 시에서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했다. 마치 DMZ를 보고 쓴 듯한 느낌이 든다.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경계에 길이 있다고 했다. “이 강은 바로 저들과 우리 사이에 경계를 만드는 곳일세. 언덕이 아니면 곧 물이란 말이지. 사람의 윤리와 만물의 법칙 또한 저 물가 언덕과 같다네. 길이란 다른 데서 찾을 게 아니라 바로 이 사이에 있는 것일세.” 강을 건너며 동행인에게 한 말이다. DMZ에서 남북 평화공존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대한 생태낙원으로 변모한 것처럼 말이다. 1992년 세계자연보존연맹이 판문점 동쪽 등지에 국제자연공원을 조성하자고 제안한 데서 그 가능성의 단편을 본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북한에 DMZ를 자연공원으로 만들자고 제의한 바 있다.

국립수목원이 DMZ 일원의 생물자원과 역사·문화 정보를 담은 책 ‘DMZ 생태문화’를 발간했다. 북미 갈등으로 인한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터라 ‘역설의 공간’을 담은 책에 눈길이 간다. 지난 5년간 구석구석 현장을 누비며 조사한 결과물이다. 책은 국립수목원 홈페이지(www.kna.go.kr) 연구간행물 게시판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DMZ의 숱한 생물이 아름다운 것처럼 임진강 한탄강 등 산야를 끼고 흐르는 강들도 더없이 푸근하고 아름답다. 그 전경을 보고 있으니 연암의 말처럼 강은 남북을 아우르는 길로 여겨진다. 강이 얘기하는 듯하다. “마침내 모두 모여 바다를 이룰 터이니 현실이 어렵더라도 비관하지 말라.”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