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인 일본에서는 최근 ‘하류노인(下流老人)’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일본의 사회운동가 후지타 다카노리가 ‘2020 하류노인이 온다’에서 처음 사용한 ‘하류노인’은 기초생활수급 수준의 적은 소득으로 생활하는 노인빈곤층을 일컫는다. 일본 인구 1억2600만 명 중 일명 ‘하류노인’은 전체 인구의 약 5%인 630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일본보다 더 빠른 고령화 과정을 밟고 있는 우리나라는 2000년 65세 이상의 인구가 7~14% 수준인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데 이어 올해 8월 노인인구 비율이 14%를 넘어서며 본격적인 ‘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 2050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일본 스페인에 이어 고령화 정도가 가장 높을 전망이다. 부산도 이와 다르지 않아 2022년 국내 7대 특별·광역시 중 가장 빨리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예정이다.

급격한 고령화 추세에서 주목할 점은 현재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49.6%에 달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고령층의 가처분 소득 역시 경제활동인구 평균 가처분 소득의 약 60% 수준으로 현저히 낮은 상황이다. ‘노인빈곤’, 나아가 ‘노인파산’ 문제는 이미 개인의 차원을 넘어 우리 경제·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평범한 경제활동을 했던 샐러리맨들이 은퇴 후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수입의 급격한 감소와 충분하지 않은 저축액, 의료비 등 예상치 못한 지출로 노인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후지타 다카노리도 그의 저서에서 하류노인들은 젊은 시절 연간 소득이 약 400만 엔(4000만 원) 수준인 평범한 중산층이었다며 ‘수입’ ‘저축’ ‘사람’이 없으면 누구든지 하류노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인구 고령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복지 수요가 늘면서 사회적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OECD에 따르면 2065년까지 인구구조 변화로 매년 약 2조8000억 원의 추가 재정 지출이 예상된다.

거스를 수 없는 현실에서 노인빈곤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대비하기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소득창출 여건 마련과 함께 노후자금 준비 지원, 그리고 사람이 중심이 되는 지역사회의 관심이 중요하다.

우선 고령층의 현실에 부합하는 다양한 일자리 지원을 통해 정기적인 소득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핀란드는 1998년 ‘경험은 국가자산’이라는 국가적인 슬로건을 내걸고 ‘장년층 고용 촉진 캠페인’을 벌였다. 장년층이 지닌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국가자산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장년층 고용기업에 대해 세제 혜택을 부여하고, 중앙정부와 지자체에 고용센터를 운영하여 취업정보 제공과 직업교육을 적극 시행하였다. 이에 힘입어 핀란드의 장년층 취업률은 현재 60%에 달한다.

우리나라도 숙련된 인력이 연령 제한 없이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60세 정년을 법제화하고, 고령화정책 시행에도 그간 재정투입을 통한 ‘시혜적 복지’에서 ‘일자리 복지’로 전환하고 있다. 2010년부터 ‘행복잡(Job)이 취업지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캠코도 최근 중·장년 금융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일자리 지원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다음으로 포용적 금융의 관점에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고령층 맞춤형 금융지원을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 고령층의 재무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과도한 의료비 지출 등에 대비한 서민금융 지원뿐 아니라 금융취약계층의 경제활동 복귀를 위한 공적 채무조정 지원도 요구된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처음으로 공적 채무조정제도를 도입·운영 중인 캠코는 상환능력이 부족한 60세 이상 고령채무자를 대상으로 최대 70%까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경우 최대 90%까지 채무감면을 지원하고 있다.

무엇보다 고령층의 사회적 고립 해소를 위한 지자체 등 지역사회의 관심이 중요하다. 부산시는 국내 최초로 ‘노인복지 용구 종합센터’를 운영해 고령 취약계층을 위한 의료장비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다른 지자체보다 한 발 앞선 대책 마련에 힘쓰고 있다. 부산에 본사를 둔 공공기관인 캠코도 사회공헌 브랜드인 ‘희망Replay’를 통해 홀몸노인 집수리, 경로잔치, 방한용품 전달, 노인복지시설 제공 등 지역사회 소외계층 지원을 한층 강화할 계획이다.

지난 2일은 제21회 ‘노인의 날’이었다. 국가경제 발전에 헌신해 온 우리 선배들의 노고에 보답하기 위한 날이다. 곧 다가올 초고령사회에 대비해 선제적인 사회 안전망 구축을 통해 노인빈곤에 따른 사회·경제적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우리 선배들이 한강의 기적을 만든 것처럼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초고령사회의 모범적인 사례를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