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예술 작품이라는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스페인의 자랑이자 북부 칸타브리아 주민의 자부심이다. 생생한 묘사와 선연한 색상의 들소, 사슴, 말 그림은 서유럽에서 싹튼 구석기 문화의 꽃으로 불린다. 칸타브리아주의 주도인 산탄데르 근교에 있다. 수도 마드리드에서 북쪽으로 400㎞쯤 가면 항구도시인 산탄데르에 닿는다.

산탄데르는 세계 5위 금융그룹으로 성장한 산탄데르은행의 뿌리이기도 하다. 1857년 이곳에서 창업한 산탄데르은행은 알타미라 동굴벽화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던 1985년 스페인 6위, 세계 152위였으나 2008년 17개 구석기시대 동굴벽화 추가로 ‘알타미라 동굴과 스페인 북부의 구석기시대 동굴 예술’로 세계문화유산 범위가 확장되는 20여 년 사이 초고속 성장을 이뤘다.

산탄데르은행은 100차례가 넘는 인수합병(M&A)으로 몸집을 불렸다. 1994년 바네스토은행을 인수하며 스페인 최고 은행으로 발돋움한 뒤 문화·언어적 배경이 유사한 중남미 시장으로 눈을 돌려 본격적인 M&A에 나섰다. 2004년 영국 굴지의 에비은행을 품에 안고 세계적 은행으로 자리 잡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산탄데르은행의 진가가 더욱 빛났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등 ‘대마불사’ 신화가 깨졌지만 산탄데르는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나라 금융당국과 금융계가 산탄데르은행에 주목한 이유이다. 국내 전문가들이 다방면으로 성장 비결을 분석했다. M&A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했으나 그 밑바탕엔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라는 원칙이 깔려 있었다. 창업 초기부터 유지한 소매금융 전통이 큰 자산이었다. M&A에도 기준이 있었다. 중남미 시장으로 진출한 배경엔 같은 문화권이란 믿음이 있었고, 현지에서 장점인 소매금융에 집중했다.

이처럼 확고한 전략적 목표 아래 주도적으로 M&A를 추진함과 동시에 계열사를 한데 묶는 전산 시스템과 일관된 의사결정 체계가 큰 힘을 발휘했다. 이는 유럽과 중남미에 있는 많은 계열사가 현지 사정에 맞춰 독립적인 운영을 할 수 있는 축 역할을 했다. 유럽 금융계의 변방 스페인, 그중에서도 작은 도시에서 출발해 세계 금융계의 중심에 선 산탄데르은행의 신화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런 연구 성과가 10년 동안 쌓였지만 산탄데르은행 근처까지 좇아갔다는 국내 금융기관을 찾지 못하니 아쉽다. 노력을 안 한 것이 아니라 실행을 못 한 탓일 터. 그만큼 세계 금융계 싸움이 치열하고, 중심권 진입은 쉽지 않다.

그 어려운 일을 BNK금융그룹이 하겠다고 나섰다. 모태인 부산은행 창립을 기점으로 오는 10일이면 50주년을 맞는 BNK금융그룹이다. 김지완 회장은 지난달 27일 취임사에서 산탄데르은행을 교훈으로 삼아야 하며, ‘한국의 산탄데르은행’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키워드는 융합과 디지털 혁신, 글로벌화다.

‘금융계 최장수 CEO’로 통하는 김 회장으로선 1986년부터 오늘의 산탄데르를 만든 에밀리오 보틴 전 회장을 닮고 싶을 것이다. 취임하자마자 이뤄진 조직 개편에서 금융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강화한 게 그 예다. 내년이면 미음산업단지에 IT센터를 완공해 그룹 전산을 통합 관리할 수 있다는 점도 호재다.

김 회장은 잘 알고, 잘하는 일에 집중해 국내 5대 금융그룹에서 한 단계 성장시키며 글로벌 금융영토를 확장해야 한다. 그 일은 결국 사람이 한다. 글로벌 영업을 위한 실력과 마인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제 걸음마 단계인 BNK금융의 초국적화지수(TNI)는 어떤 수준인지 묻고 싶다. TNI는 금융기관별 국제화 수준을 나타낸다. 사람을 키워야 하고, 기존 업무와 새 업무는 조화가 중요하다. 동남권 경제의 혈맥 역할이 그 바탕이다. 8개 계열사 8000명 넘는 임직원은 물론 M&A를 통해 새로 맞이할 식구까지 화학적 결합이 이뤄져야 시너지 효과가 생긴다.

건전한 지배구조 구축도 긴요하다. 김 회장 취임 배경엔 BNK금융의 순혈주의에 따른 견제 장치 부재 문제가 있었다. 산탄데르은행은 2006년과 2007년 수많은 리스크위원회를 열며 금융위기를 극복했다. CEO의 독주와 견제 장치 부재라는 악순환은 이제 끊어야 하겠다.

김 회장은 취임사를 맹자의 ‘하필왈리’(何必曰利)로 시작했다. 이익을 앞세우면 오히려 조직에 해를 끼칠 뿐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5개월에 걸친 리더십 부재와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엄격한 도덕적 잣대, 자신에게 쏟아졌던 낙하산 논란을 불식하려는 각오로 받아들여진다. 김 회장이 ‘한국판 산탄데르’를 만들고 싶다면 ‘하필왈리’의 다짐과 함께 씨앗을 뿌리는 데 만족하겠다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글로벌 시장 진출엔 20년 정도 공을 들여야 한다’. 에밀리오 보틴 전 회장 충고다.

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