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동차산업의 간판 현대차가 위기에 빠졌다. IMF사태 이후 승승장구해왔던 현대차는 가뜩이나 내수시장에 봇물 터지듯 쏟아져 들어온 외제 수입차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 북핵과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다. 주식시장에서도 현대차의 주가는 연일 곤두박질치고,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마저 현대차의 신용등급을 강등시켰다. 사드 배치로 중국에서 ‘반한(反韓)정서’가 높아지자 현대차와 합작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 베이징차가 합작청산의 으름장까지 놓고 있다. 20년간 공들여온 연간 수십조 원의 ‘황금시장’인 중국 자동차 시장을 고스란히 일본, 미국, 독일에 넘겨야 할 판이다. 매년 성장세를 유지했던 현대차의 경영실적은 수년 만에 처음 10% 넘게 떨어졌다. 2010년 ‘토요타 리콜사태’로 일본과 독일의 부러움을 받으며 초성장을 했던 현대차는 7년 만에 전세가 역전되면서 악몽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국경제에서 자동차산업은 제조업의 핵심이다. 완성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부품과 철강 화학 IT 기술 등이 결합되어야 하고, 수십만 개의 부품업체와 하청업체가 연관되어 있다. 울산, 창원, 부천, 광주 등 지방 도시마다 꽉 들어차 있는 산업공단의 중소업체는 대부분 자동차 연관업체이다. 이들은 매일 아침 들려오는 우울한 소식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지방공단에 있는 중소 자동차 부품업체 사장은 현대차의 주가가 급락하는 날에는 직원들까지도 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동차산업의 특성상 실물경제와 고용, 금융시장에 미치는 전후방 효과는 다른 산업에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절대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올해 7월까지 품목별 수출액을 보면 자동차는 전체 수출의 7.7%를 차지하고 있다. 반도체가 전체 수출의 15.5%를 차지해 압도적으로 많지만, 이는 2000년 이후 현대차 기아차 등 국내 자동차업체들이 미국 유럽 중국 러시아 등지에 대규모 해외 공장을 설립하면서 현지 생산과 판매에 나선 때문이다. 반면 반도체는 대부분 국내에서 생산되어 수출되기 때문에 통계상 수출 비중이 높아 보일 뿐이다.
현대차가 위기에 처한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그중에서도 최근 늘어난 리콜사태와 불안한 노사관계로 소비자들의 신뢰가 추락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2000년 이후 현대차는 ‘품질경영’을 앞세워 경영의 초점을 질(質)에 맞췄다. 세계시장에서 현대차의 최대 강점은 ‘가격 대비 최고 품질의 자동차’였다. 하지만 ‘양적 성장’에 도취해 ‘품질의 궤도’를 이탈한 것은 위기의 출발이다. 여기에 불안한 노사관계도 현대차를 더욱 수렁에 빠트리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해마다 반복되는 노사분규는 연간 수조 원의 손실을 초래한다. 회사는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근로자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하지만 근로자도 회사의 위기는 외면한 채 대가만 요구하면 자칫 ‘암탉을 잡아먹는’ 꼴이 될 수 있다. 누울 자리가 있어야 다리 뻗을 곳도 있을 것이다.
자동차산업의 위기탈출을 위한 정부의 대책이 시급하다. 국방안보를 위해 사드 배치가 불가피한 만큼 경제안보를 위한 산업대책도 강구해야 한다. 대통령이 직접 위기에 처한 자동차산업의 현장을 찾아 걸맞은 지원책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자동차업계의 명운을 가를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문제도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보듬어줘야 한다. 안팎에서 밀어닥친 어려움에 하늘만 쳐다보며 곡(哭)하는 자동차산업을 방치했다가 나중에 국가 경제 전체가 큰 낭패에 처할지도 모를 일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침몰 위기에 처한 미국의 자동차 산업계에 특단의 지원책을 내놓았다. 대표적인 것이 자금난에 처한 자동차업체와 소재, 부품업체들에 저금리로 50억 달러 규모의 자금지원과 친환경 자동차 인프라구축을 위한 지원책이었다. 물론 오바마 정부가 내놓은 50억 달러는 자동차업체들이 요구한 240억 달러에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 지원책이 발표되자 미국 자동차업체들의 주가는 폭등했고, 실제 자금지원의 몇 배에 이르는 지원 효과를 거두었다. 결국 벼랑 끝에 섰던 미국 자동차업체들이 기사회생하면서 세계시장을 호령하는 위치에 복귀하자 미국경제 전반의 실물시장과 고용시장이 수년 만에 다시 호황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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