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고해성사가 라디오 전파를 탄 적이 있다. 학창시절 교실에 혼자 있다가 친구의 가방에서 꺼내든 돈을 엉겁결에 다른 친구의 가방에 넣어버렸다는 사연이었다. 억울하게 도둑 누명을 쓰는 이를 보면서도 용기가 없어 지켜보기만 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불온한 침묵으로 참혹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친구를 수십 년 동안 내팽개친 것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서 늘 미화되고 있는 사악한 마음이다. 긴 세월 수수방관한 자신의 죄악을 밝힌 덕에 상품까지 받으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는 자기 합리화로 위안했을 터였다.
양심은 그런 것이다. 데이터화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사안이기에 법은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래서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핀셋 판결이 가능하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아도 책임을 져야 할 단 한 사람만이 열 명이 넘는 변호사를 고용하여 무죄 판결을 받아내고 홀로 빠져나가는 몰염치를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근거만 들이대면 법은 교활한 계략으로 빠져나가는 범죄자를 묵인한다. 정의의 이름으로도 악마의 민낯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류의 작업이라면 빅데이터 시대인 지금 인공 지능이 해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세상의 모든 영역을 인공지능이 장악하고 계량화한다고 해도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 남는다면 오직 인간만이 가진 양심의 자리뿐이다.
미국 뉴욕의 줄리아니 시장이 1994년에 범죄율을 75%나 줄일 수 있었던 것은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라는 이론의 성공 사례라 말한다. 6000대에 달하는 열차 안팎의 낙서를 지우고 무임승차, 노상 방뇨를 단속하고 위반자를 체포했다. 낙서 지우기 프로젝트 시행 5년 후 범죄율은 75%나 줄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라는 범죄 심리학이 성공한 사례로 드는 일이다. 하지만 언급되지 않았으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범죄자들로 인해 고통받았던 지하철 이용자에 대한 뉴욕 시장의 선한 마음에서 비롯된 배려와 열정인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진입해 있다. 직업의 47%가 사라진다고도 예측한다. 1950년대 5000바이트의 대형 컴퓨터의 세상에서는 상상조차 못 했던 빅데이터가 트렌드인 세상이 와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 많은 정보는 서로 소통하지 않을 수 없기에 융복합의 시대라고도 불린다. 비빔밥의 빅데이터가 밥이라면 그릇은 클라우드 환경에 비유된다. 다양한 재료를 얼마나 잘 섞어주느냐가 비빔밥의 감칠맛을 끌어낼 터이니 이질적으로 보이는 대상도 한자리에 앉아 고민해야 하는 플랫폼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자면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김건모와 트와이스처럼 솔로와 걸 그룹이 함께하는 콜라보레이션의 성공은 고정관념을 버렸기에 얻을 수 있었던 결과이다. 이렇듯 창의력은 편견은 버리되 차이와 사이좋게 지내며 선한 열정으로 배려하고 나눌 때 그 존재 가치가 생긴다.
대우그룹의 분식 회계나 IMF 사태 때 30대 재벌 중에서 15개 그룹이 망한 사실에서 선한 열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 참극에 대한 비용은 국민이 세금으로 감당해야만 했다. 우리는 또 1만3421개의 프랜차이즈가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접하고 있다. 그들의 비명은 한 줄의 기사 속에만 갇혀 있다.
미국의 뉴딜 정책은 40년간 불평등 해소를 위해 일관되게 집중했던 정책이다. 그러나 한국은 IMF 사태 이후 양극화가 극심해진 지난 20년간 불평등 해소에 실패했다고 평한다. 양심의 문제를 외면한 결과는 아닌지 점검해야만 할 때가 아닐까 싶다.
국가의 관리비는 전문가들의 계획과 실천으로 운영이 된다. 그래서 인공 지능을 활용한 국민의 게놈 프로젝트까지 설계되는 것이다. 의료보험료의 80%를 연명치료에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복지비용의 낭비를 보여주는 수치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의 유전자 염기 서열을 연구하는 이들은 인공 지능으로 국민의 효율적인 건강관리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처럼 여러 측면에서 인공 지능의 임무는 아주 많다. 그런데도 소프트웨어 능력자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우리의 상황을 보면 위기다. 하지만 국가가 국민으로 하여금 서로를 배려할 수 있도록 바람직한 자리를 마련해간다면 우리의 자식들은 덜 고생할 것이다. 우리 모두의 태도 또한 달라져야만 한다. 중국의 네이멍구 쿠부치 사막에 11년 동안 8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녹색 만리장성을 쌓은 한국과 중국의 청년들처럼 한중 관계가 정치적으로 어떤 위기를 맞이하게 되든 변함없는 마음으로 한자리에 앉을 수 있다면 세상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있지만, 또다시 생겨날 새로운 직업과 선한 마음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 인공지능에 다 빼앗긴 인간에게 남겨진 것은 삶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감성과 양심뿐이기 때문이다.
동의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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