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밀히 말해서 ‘죽음의 외주화’라 해야 한다. 하청·재하청을 통해 위험한 작업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맡기는 대기업의 행태 말이다. 현재 통용되는 ‘위험의 외주화’라는 개념으로는 이 비인간적 기업행위를 설명하기에 미흡하다. 지난 3년간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 중 하청 비율이 88%에 이르는 300인 이상 조선업체들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지난 20일 선박 탱크 폭발사고로 4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숨진 STX조선해양에서 또다시 이런 실상을 또렷이 목격한다.

숨진 노동자들은 재하청업체 소속이다. 다단계 구조를 거쳐 아래로 내려갈수록 작업 대금과 임금은 푹푹 줄어든다. 재하청업체 노동자는 가장 적은 임금을 받고 가장 위험한 작업을 한다. 그러다 법규에 명시된 산소 공급용 공기호흡기나 송기마스크, 정전기 발생을 막는 제전화나 제전복, 폭발을 방지할 수 있는 방폭 손전등 등 안전장구들은 물론 안전 감시인도 없는 가운데 환기시설이 망가진 밀폐된 공간에서 도장 작업을 하던 중에 질식사했다. 부검 결과와 목격자 증언 등에서 드러난 사실이다. 원청업체, 아니 이런 기막힌 작업 관행을 방치한 우리 사회가 저지른 살인에 다름 아니다.

‘죽음의 외주화’의 최대 책임자는 정치권이다. 그동안 숱한 유사 사고가 발생했건만 기업 편향적 논리에 치우쳐 근절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19대 국회 때 일부 국회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는데도 활동이 종료될 때까지 처리하지 않았다. 20대 국회도 재발의된 이 법안을 그대로 묵혀두고 있다. 이러고서도 감히 국민의 대변자를 자처할 수 있는가. 대의민주주의를 운운할 자격이 있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3일 산업안전보건의 날 기념사에서 “그 어떤 것도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정부는 내년 3월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너무 늦다. 진정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모든 일을 제치고 이 문제부터 해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