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산국제영화제(BIFF) 사무국은 성명을 발표해 다이빙벨 상영철회 압력을 가한 서병수 시장의 공개사과 요청,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복귀, 국내외 영화인들의 지지와 참여를 호소했다. 영화제 사무국의 성명서 발표 후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올해 영화제를 끝으로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후 부산시는 기자간담회를 열었지만 현재까지의 상황에 대한 진지한 책임의식을 보여주지 않았다.

내가 불과 몇 해 전 그려본 영화제 20주년의 모습은 이렇다. 20년간 영화제를 이끈 주역들이 한자리에서 샴페인을 터트리는 모습이 신문의 1면을 장식하고, 정부는 BIFF를 세계적인 영화제로 성장시킨 이들에게 문화예술공로훈장을 수여하고, 그 주역들이 해운대부터 남포동 BIFF광장까지 시민들에게 손을 흔드는 카퍼레이드가 펼쳐지는 풍경을 생각했다. 김동호, 이용관, 김지석, 강수연 그 얼굴들이 어깨동무하며 관객들을 향해 손을 힘껏 흔들 때 비로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을 실감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은 과거가 되었다.

부산시의 BIFF 외압사태에 대해 단호한 대처를 하지 못한 결과 4년이 흐르도록 BIFF가 표류 중이라는 뼈아픈 진단은 영화제 집행부에 대한 질책을 넘어 부산을 거점으로 관객운동단체를 이끌고 있는 나에게도 매서운 질책으로 들린다. 시간이 지나면 하나씩 모든 것이 원만하게 풀어지고 제자리를 찾을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너무나 낭만적인 것이었다.

BIFF 사태가 위기에 치달았을 때 부산시민들이 펼친 다양한 연대활동을 기억해본다. 남포동 광장에서 두 달간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였고, BIFF를 지키는 시민문화연대로 결속해 ‘힘내라 BIFF 일일호프’ ‘다이빙벨 상영회’ ‘시민문화연대의 밤’을 열었고 행사마다 수백 명의 시민 관객이 동참해 지지와 후원을 이어갔다. 이 외에도 SNS를 통한 BIFF 응원 손글씨 릴레이, BIFF 수호 시민걷기대회, BIFF 사태를 알리는 촛불광장에서의 캠페인 행사들이 부산 시민의 힘으로 개최되었다.

부산의 시민관객들이 연대활동을 통해 지켜내려고 했던 것은 우리의 힘과 염원으로 일궈낸 부산국제영화제가 도달한 자유의 크기였다. 그런데 영화제를 오랫동안 지켜본 관객인 나로서도 이 점에 대해 잘 몰랐던 것 같다. 피켓을 들고 남포동 광장을 지키고 사람들에게 함께 시위에 동참하자고 전화기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음에도 정작 부산국제영화제의 본질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것이다. 이렇게 아프게 수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나니 어떻게 해서 이런 파장들이 생겨나는지 알겠다.

우리 관객들은 부산국제영화제를 매번 찾으면서도 부산국제영화제가 정녕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BIFF 사태 앞에서 나름대로 치열하게 항거했다고 하지만 그 치열함을 BIFF는 승인하지 않았다. BIFF 사태가 처음 터졌을 때 이 사안의 본질을 알 수 있었다면 결코 타협할 사안이 아니므로 사력을 다해 저항해야 한다고 서로가 서로를 일깨웠을 것이다. 하지만 BIFF를 지키기 위한 그 첫자리에 지금의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더라면 나는, 우리는 어떤 희생을 치를 각오를 할 수 있었을까? 그 두려움과 망설임은 관객들의 패배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영화인들과 부산의 시민들이 쌓아 올린 자유의 깃발 BIFF가 저 홀로 펄럭이고 있다. BIFF는 소나무처럼 굳건하게 그 자리에서 처음부터 우리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안에서 동요한 것은 우리들의 일이었다. 우리는 애초에 그 눈부신 자유의 힘, 그 영향 아래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자유의 의무를 부과하는 BIFF를 외면하든지 아니면 BIFF가 훼손되지 않도록 지켜내야만 했다. 그것이 곧 우리를 지키는 일이었다. 그 중간이 성립할 수 없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는 설움과 그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BIFF라는 영화제의 역사는 곧 크고 작은 표현의 자유를 지켜온 험난한 세월이었다. 9회 BIFF 때 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마스터 클래스에서 자신은 흐르는 물에 글씨를 쓰는 것이 아니라 돌에 글씨를 새기듯 한 쇼트 한 쇼트를 찍는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돌 위에 새긴다는 그의 영화철학처럼 BIFF의 본질인 자율성과 독립성 역시 돌에 새겨져 지워질 수 없는 글씨처럼 영원한 것이었다. 그것은 애초에 흥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모퉁이극장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