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자동차가 첫 도입된 건 1903년. 당시 고종 황제가 미국 포드 차 1대를 들여왔다. 고종은 가끔 궁 밖으로 타고 나가 백성들을 놀라게 했다. 1769년 프랑스에서 증기기관 자동차가 발명된 지 134년 만이고, 1886년 독일의 칼 벤츠가 가솔린 차를 만든 지 17년 뒤의 일이었다.

1912년에는 영업용 차가 처음 등장했다. 서울의 한 갑부와 일본인이 포드T형 4대로 운영에 나섰다고 한다. 한국 택시업의 효시인 셈이다. 자동차 수가 점점 늘면서 1920년대에는 운전사가 선망의 직업이 됐다. 대졸 사원 월급이 40원인데 비해 운전기사는 100원 정도의 수입을 올렸다.

1950년 한국전쟁 전까지 전국의 택시는 1570대였는데, 모두 외국산이었다. 우리 손에 의해 최초로 만들어진 ‘시발(始發) 자동차’가 1956년 본격 공급되면서부터 택시 대수는 더욱 늘어났다. ‘첫걸음’이란 뜻의 이 차는 군용 지프 모양과 거의 같았다. 미군이 쓰던 지프 부품과 4기통 엔진을 조립한 것이었다. 영업용으로 인기가 높아서 ‘시발택시’로 더 많이 불렸다.

‘석유 파동’이 몰아친 1970년대에는 소형차 브리사(Brisa)가 택시로 각광받았다. 기아산업(기아차 전신)이 1974년 시판한 브리사는 985㏄로 휘발유를 적게 먹었다. ‘10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송강호(김만섭 역)가 독일 기자 힌츠페터를 태우고 다녔던 택시가 브리사다. 두 사람을 도왔던 광주 택시기사 유해진(황태술 역)이 몰았던 차종은 현대차의 포니(Pony). 1976년 출시된 포니는 국산 최초의 고유 모델로 국내에 마이카 시대를 열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추억의 승용차들이다.

이 영화 속의 또 다른 주인공인 연두색 브리사와 고(故) 힌츠페터의 카메라·여권·안경 등 유품이 엊그제부터 광주광역시청에서 전시회를 통해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을 세계에 알렸던 힌츠페터를 추모하기 위해서다. 이들 두 택시와 유품을 5·18 기록물로 영구 보존하자는 여론이 일고 있다는 소식이다. 사료적 가치가 크다는 점에서 그럴 만하다.

브리사 택시는 1981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해 신군부 정권의 2·28조치(자동차산업 합리화조치)로 후속 차종도 없이 강제 단종을 당하면서다. 그런 브리사가 36년 만에 ‘5·18 광주’ 영화로 다시 빛을 보는 것 같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