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작은 테라스에서는 안사람이 화초를 키우고 있다. 허리 숙일 일이 많아 척추에 안 좋을 것 같아 무리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커가는 식물을 보는 것은 큰 행복이라는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안사람이 집을 비운 며칠 동안 가뭄이 계속되었는데 식물이 죽어가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아차! 관심이 없으니 식물이 죽어가도 내가 몰랐구나. 응급 처치 후 다행히 회복되었지만 그 화초가 우리나라 의료계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문재인 정부가 비급여 의료비를 표준화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손해보험사 수익성을 저해하는 실손보험 손해율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가 있었다. 손해보험사의 수익성을 살펴보자. 2017년 6월 27일 심평원이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2016년 자동차보험 통계에서 자동차 사고로 진료받은 총인원은 204만 명이었고, 총진료비는 1조 6586억 원이었다. 가장 큰 회사인 삼성화재의 2016년 자동차보험 수입은 2조 4757억 원으로 2016년 한 해 자동차 사고 총진료비용보다 훨씬 많았다. 삼성화재의 당기순익은 8662억 원이었다.

자동차 보험 회사의 수익성이 좋아진 데는 사고 시 국산 차 대여, 사고율 감소 등의 요인도 있겠지만 병원으로 지불된 치료비가 감소한 이유가 아주 클 것으로 생각된다. 2013년부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보험회사들로부터 심사료를 받고 의료보험처럼 자동차 보험도 심사를 맡고 있다. 자동차 보험은 모든 치료 재료대에서는 이익을 남길 수 없게 되어 있다. 즉 병원 입장에서는 수술료 외에는 수익이 생길 수 없는 구조이다. 수술을 하면 할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여서 필자는 자동차 보험환자 지정병원 자격을 반납하였다.

생명보험회사 수입 보험료는 2016년 3분기만 해도 84조 6516억 원이고 3대 이동통신 2015년 매출액은 50조2013억 원이다. 한 해 우리나라 의료보험료는 환자 부담 및 정부 보조 포함 2015년 기준 56조 원 정도이고 비급여 진료비는 13조5000억 원이었다. 의료계 종사자 인원은 45만 명 이상인 데 반해 25개 생명보험회사 직원 수는 2만6219명(2017년 3월 기준), 3대 이동통신사 직원 수는 3만6000명 내외이다. 의료계는 보험회사나 이동통신사보다 경제 규모가 작은데도 10배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지난 9일에 건강보험 보장 강화 정책을 발표했는데 2022년까지 국민 부담을 대폭 줄이겠다고 말했다. 국민 부담을 줄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의료계의 어려움을 고려하는 내용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 병의원 종사자는 국민에 포함되지 않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분만이 가능한 의료시설이 없는 곳이 228개 시·군·구 중 56곳이다. 최근 10년간 모성사망률은 2배나 증가했다. 강원도, 충청도의 모성사망률은 산모 10만 명당 30명으로 수도권이 2배 이상이고 중국이나 카자흐스탄보다 못하다. 이것은 의료의 양극화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일 민생 안정을 위한 입법이 최우선 과제라고 했고 복지는 시혜 아닌 국가 발전전략 핵심요소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의료는 복지가 아닌 모양이다. 복지 예산이 110조가 넘는데 보건의료 예산은 5조도 안 되니 그럴 만도 하다. 우리나라 의료의 90%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법인 및 개인 병의원은 1% 정도의 수입만으로 운영하라는 것이고 대기업의 보험회사는 수익성이 약간만 떨어져도 국가에서 보전해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 의료는 지금 관심이 필요하다. 100% 정부 통제 아래에 있는 우리나라 의료는 관심이 없어지면 점점 고사할 것이다. 미국 의료산업은 GDP의 14.7%인데 우리나라는 5%도 되지 않는다. 의료보험료 누적 흑자가 20조 원이 넘는다고 한다. 이 돈으로 점점 고사하고 있는 시골 병원의 정상화에 투입해 의료 왕따, 의료 양극화가 해결되길 기대해 본다.

박원욱병원 대표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