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버스 옆구리를 탕탕 치며 ‘오라잇’을 외치는 버스 안내양을 동경한 적이 있다. 손님이 타면 버스 요금을 받고 멀리서 손님이 오고 있는지 두리번거린 다음, 버스 안내양이 문짝을 탕탕 치면 그 큰 버스가 움직이는 것이다. 승객이 많으면 밀어 넣고 때로는 타지 못하게 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자 같았다. 특히 삐딱하게 쓴 베레모는 얼마나 멋져 보였던지. 그런데 어느 날 뒷문에 있던 버스 안내양은 사라지고 버스 운전사가 혼자 그 역할을 했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버스 운전사가 앞문과 뒷문의 센서를 통해 승객의 승·하차를 확인해 문을 자동으로 여닫게 된 것이다.

인쇄 부문에서도 과거에는 다양한 직업이 있었다. 활자를 주조하는 활자주조공, 인쇄용 원판을 만드는 데 필요한 활자를 골라내는 문선공, 원고를 보면서 판을 짜는 식자공 등이다. 하지만 신문사나 출판사가 CTS(컴퓨터 조판 시스템)를 도입하면서 자연스레 이들 직업도 사라졌다.

지금은 없어진 직업들에 대해 생각해 본 계기는 카카오뱅크 출범이다. 지난달 27일 서비스를 시작한 카카오뱅크는 출범 2주일도 채 안 된 지난 8일 신규 계좌개설이 200만 좌를 돌파했다. 입출금예금 및 정기 예·적금을 포함한 수신 실적은 9960억 원, 대출이 실행된 금액인 여신은 7700억 원이며 카카오프렌즈 체크카드 발급 수는 141만 장을 넘겼다. 이는 지난해 연간 은행권 전체의 비대면 계좌개설 건수인 15만 건의 13배를 넘는 수치다. 메가톤급 흥행이다. 카카오뱅크의 흥행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해외송금 수수료는 시중은행의 10분의 1, 신용 대출금리는 동일 신용등급일 경우 은행보다 1%포인트 이상 낮다.

카카오뱅크가 흥행몰이를 이어가자 시중은행은 뒤늦게 수수료를 낮추고, 해외송금 수수료도 깎아 주는 등 대책 마련에 바쁘다.

이처럼 핀테크(fintech·금융과 기술의 결합) 발전에 따른 비대면 거래 활성화로 은행이나 증권사 지점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인터넷은행이 활성화되면서 IT 인력 채용은 늘겠지만 기존 은행원들의 일자리는 줄어들 것이다.

증권업계도 홈트레이딩과 모바일트레이딩이 늘고 지점 대형화를 추진하면서 직원 수가 급감했다. 2011년 4만4000여 명에서 현재 3만5000여 명으로 20% 이상 줄어들었다.

미래학자들은 과거 1~3차 산업혁명 과정에서 기계가 블루칼라의 일자리를 대체했던 것처럼 4차 산업 혁명 시대에는 화이트칼라의 자리를 AI(인공지능)가 대신할 것으로 전망한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용어인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 사물 인터넷, 빅데이터, 로봇공학, 나노기술 등 첨단 기술이 서로 융합돼 기존 산업영역뿐만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혁신적 변화를 창조하는 것을 뜻한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1~3차 산업혁명 때도 기존 일자리에 대한 걱정을 했지만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다고. 하지만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맞는 우리는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기계의 도입으로 생산성이 늘었고 경제와 사회가 급격히 다양화됐던 기존 산업혁명과 달리 4차 산업 혁명으로 지식 노동이 AI로 대체된다면 사람들이 갈 자리는 없을 것 같다.

‘일자리의 미래’를 쓴 칼 베네딕트 프레이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4차 산업혁명으로 20년 이내에 현재 있는 일자리의 47%는 인공지능과 로봇 등으로 자동화가 가능해지면서 사라진다”고 밝혔다. 실제로 현재 미국 온라인몰 아마존은 사람 대신 포크레인같이 생긴 로봇팔(stow)과 로봇청소기같이 생긴 키바(kiva)로 물류센터를 운영하면서 출고시간, 비용 등이 크게 절감됐다고 한다.

내가 속한 직종은 과연 살아남을지, 자녀 세대는 어떤 직업을 택해야 할지 걱정이다. 기술의 발전에 감탄하면서도 변화의 흐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신설된 ‘중소벤처기업부’와 ‘과학기술혁신본부’ 등 정부 차원에서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철저히 대비해준다면 이런 불안감은 줄어들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

독자여론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