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부동산 규제대책인 일명 ‘8·2 대책’을 보면서 난 문득 지난 노무현 정부를 떠올렸다. 당시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부동산과 전쟁을 했다. 규제를 내놓으면 시장은 잠시 주춤하다 반격했고, 당국은 더 강력한 규제를 던졌다. 그러면 시장은 “그래? 좋아!”라며 상승을 늦추지 않았고, 노 대통령은 “정부를 우습게 보지 말라”며 압박했다. 그렇게 2003년 ‘10·29 대책’부터 2007년 ‘1·11대책’까지 모두 12차례에 걸쳐 규제책이 나왔고, 종합부동산세와 DTI(총부채상환비율) 대출규제까지 모든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이 기간 서울 강남 아파트 가격은 100%가 넘는 상승률을 기록했다. 2~3년 만에 집값이 2배 넘게 올랐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직도 “노무현이 부동산값 다 올렸다”고 한다. 아예 ‘노무현 집값 트라우마’라는 단어도 있다.
그런데, 당시 부동산값 폭등은 세계적인 추세였다. 미국은 부동산 버블의 핵심이었는데 라스베이거스의 스트립 댄서가 집을 3채 이상 살 정도로 부동산 투자에 미쳐 있었다. 그럼, 그다음은 어떻게 됐는가. 잘 알다시피 2008년 말 드디어 사건이 터졌다. 일명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터지면서 미국 부동산은 급락했고, 이 여파는 전 세계로 확산됐다. 집값이 ‘잡힌’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가 모든 것을 걸고 전쟁을 치렀지만 패했던 집값이 엉뚱하게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를 통해 이뤄진 것이다.
이다음은 여러분이 더 잘 알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선 대출을 틀어막고 집값을 조였지만 전셋값이 폭등했다. 집 있는 사람들은 전셋값 상승으로 버텨낸 반면 세입자들은 주거비 부담에 허리가 휘는 시절을 보냈다. 2014년 말부터 박근혜 정부는 부동산 규제를 다 풀었다. 여기에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하겠다는 미국이 꼬리를 내렸다. 돈들은 주식과 부동산에 달려들었고 세계 부동산이 다시 치솟았다. 그러면서, 놀라운 데자뷔처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고, 다시 부동산과의 전쟁을 선포했고, 보유세만 빼고 노무현 정부가 꺼내 들었던 모든 규제를 한꺼번에 다 쏟아냈다.
실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앞으로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될까 하는 전망이 아니다. 이쯤에서 우린 지난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시장에 대해 좀 더 깊이 고민해야 하다는 걸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질문이다. ‘정말 당시 부동산값은 노무현 때문에 올랐는가?’
그렇다. 만약 노무현 정부가 그런 부동산 규제를 하지 않았다면 집값은 오르지 않았을까? 전쟁을 하지 않았다면 강남 아파트는 가격이 떨어졌을까? 그렇게 되진 않았을 것이다. 경제 쪽에서 어느 정도 일하고 있는 분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때 풍부한 유동성이 얼마나 몰아쳤으며 전 세계인들의 부동산에 대한 탐욕이 얼마나 극에 달했는지를 말이다. 오죽하면 미국이 이 부동산 때문에 휘청댔고, 그 여파가 이후 10년에 걸쳐 지속되고 있지 않은가. 그럼 노무현정권의 실패는 무엇이었을까. 난 과도한 자신감이었다고 본다. 부동산 투기세력을 때려잡겠다는 진정성은 인정하지만 당국이 워낙 “나만 믿으라”고 몰아붙이면서 선량한 국민을 혼란에 빠뜨렸다. 그건 지도자로서 치명적이다.
왜 국민이 그때 분노했는가. 정부는 나만 믿으라는데 2년, 3년에 걸쳐 집값이 계속 오르자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2억5000만 원 하는 아파트가 2년 만에 6억 원이 되는 현실에 그 답답함과 먹먹함이 모두 노무현 정부로 향한 것이다.
연초 이후 집값이 꽤 올랐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지만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세계적인 현상이다. 이번에 강력한 8·2대책이 나왔지만 만약 미국과 유럽, 중국 등의 중앙은행이 저금리와 완화적인 통화정책 기조를 이어간다면 어쩌면 집값은 또 오를 수 있다. 지난 노무현 정부 때처럼 말이다. 그래서 난 이번 문재인 정부는 과거 ‘전쟁’ 같은 방식으로, “좌시하지 않겠다” 뭐 이런 식으로, 부동산을 다루지 않았으면 한다. 게다가 이번엔 더 큰 문제도 있다. 당시엔 정권이 바뀌면서 부동산이 무너졌지만, 이번엔 어쩌면 이번 정권에서 급락할 여지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정반대로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급락의 주범으로 두고두고 욕을 먹을 수 있다. 노무현 정부가 집값 폭등의 핵심으로 영원히 기록되는 것처럼 말이다. 더 냉정하고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이번만큼은 실패를 반복해선 안 된다.
경제칼럼니스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