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유튜브에 ‘생활형 적폐’ ‘생계형 적폐’라는 말이 올라왔다. 다소 생소한 용어인지라 내막을 들여다보니 서울의 한 개업 치과의사가 올린 영상에서 비롯됐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이 누군가의 신고에 의해 개설 10여 일 만에 느닷없이 폐쇄됐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어 만약 누리꾼들이 그간 페이스북에서 주장했던 내용에 공감을 한다면 이를 각자의 SNS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널리 퍼뜨려달라고 부탁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페이스북 계정이 강제로 없어지는 건 드물지 않다. 따라서 어쩌면 이 치과의사의 사례도 그냥 조용히 묻혀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해당 유튜브 동영상이 유달리 주목을 받은 것은 그가 그동안 보여준 행적 때문이다. 누리꾼 사이에서 ‘양심 치과의사’로 불리는 그는 2015년 고발성 방송출연을 계기로 각종 인터넷 매체를 이용, 과잉진료의 부작용을 계속해서 알리는 노력을 해왔다.

모두가 짐작하다시피 그에게 돌아온 것은 치과계의 좋지 않은 시선이었다. 이 치과의사는 유튜브 영상에서 자신이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다만 돈 없는 환자를 울리는 과잉진료를 생활형 적폐라고 생각했으며 이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미루어 보건대 이 치과의사는 같은 방법으로 생계를 꾸리는 동종 업계 기득권 세력의 횡포를 고발하려 이런 용어를 썼을 법하다.

그의 주장이 100% 옳은지는 앞으로 판명날 일. 또 사용한 단어가 적절한지도 동종 업계 종사자가 아니라면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사안과 별개로 사실 우리 사회에는 생활형 적폐라 부를만한 것이 차고 넘친다. 용기가 부족해 문제 제기를 못 했고 애써 모른 척했던 것들이다. 아니면 관심이 없어 미처 눈여겨보지 않았을 뿐이다.

나이 지긋한 아파트 경비원들이 못된 관리사무소 소장이나 입주자 대표로부터 호된 수모를 당하고 청춘 남녀들은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살인적인 근로조건에 신음한다. 서민들의 발 역할을 하는 버스 기사들은 제대로 휴식을 하지 못해 졸음운전의 나락으로 내몰린다. 지적 장애인들이 고용주로부터 불합리한 대우를 받으며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SNS에서는 개인이 겪은 불합리를 호소하는 이도 많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누군가는 직장 내의 지나친 음주회식 문화가 적폐와 뭐가 다르냐는 하소연을 올렸다. 축제에 갔더니 많은 정치인이 격려사나 축사라는 명목 아래 습관처럼 장광설을 하는 데 질렸다는 글도 있다. 앞뒤 사정 가리지 않고 인터넷에서 무차별적으로 자행되는 이른바 ‘신상털기’는 간접살인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적폐 청산은 지난 대선을 전후해 우리 사회에서 엄청나게 많이 사용된 단어 가운데 하나다. 문재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때부터 이 구호를 국민과의 약속으로 내걸었다.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이 얼마 전 나온 새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서 최우선 순위에 오른 것은 일찌감치 예견됐던 일이다.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이 이러니 적폐 청산 작업에는 가속도가 붙는 중이다. 지난 27일 여야 의원 131명은 ‘박근혜 정부 국정 농단행위자 소유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을 제출·발의 했다. 최순실 씨 은닉 재산 몰수가 목적이다.

적폐 청산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얼마 전 서울신문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75.6%가 문재인 정부의 방침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자연히 국가정보원이나 검찰, 기타 사정기관, 정부 부처, 공공기관 등 적폐 당사자로 지목된 기관들은 몸을 낮출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청산의 범위는 박근혜 정부를 넘어 이명박 정부에까지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권력을 바탕으로 무소불위를 행사한 이들이 제재를 받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장삼이사는 자신들의 주위에서 관행처럼 굳어진 사소한 불합리도 이 기회에 없어지기를 바란다. 생활형 적폐의 완전한 근절이다. 지식인들이 지금은 체제를 뛰어 넘어 개인의 적폐까지 대대적으로 청소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고민은 생활형 적폐의 경우 큰 조직에 비해 체계적인 근절이 힘들다는 점이다. 국정원이나 검찰 개혁 등은 정부가 작정하고 밀어붙일 수 있지만 일상 속 사소한 불합리는 단시일 내에 바로잡기가 어렵다. 게다가 생활형 적폐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도 쉽지가 않다. 누구는 작은 부조리 청산을 말하는 사람들을 향해 “그러한 너는 얼마나 깨끗하냐”고 반문한다. 이 질문에 명쾌하게 대답을 할 수 있는 이는 장담하건대 아무도 없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해 보인다. 생활형 적폐가 해소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보다 큰 적폐 청산은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