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이른바 ‘걷기 열풍’ 속으로 빠져든 지 오래다. 제주 올레길을 시작으로 부산 갈맷길, 지리산 둘레길 등 전국에 다양한 개성을 가진 둘레길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몰아닥친 ‘웰빙 열풍’에 더해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천천히 걸으며, 명상도 하고 건강도 챙길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1000만 관광도시를 표방하는 경남 김해시는 9경(볼거리), 9미(먹거리), 9품(살거리), 9길(걷고 싶은 길)을 내세우며 탐방객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9길은 단연 백미다. 김해 길을 걷는 것은 2000년 역사를 가진 ‘가야의 성지’ 김해의 속살을 들여다보며 수많은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가야사 누리길, 해반천 가야의 거리길과 허황후 신행길은 금관가야 김해의 탄생 설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등 시간여행을 하기에 제격이다. 가야사 누리길을 걷다 보면 문화재청이 진행 중인 봉황동 가야 왕궁터 발굴 현장도 먼발치서 구경할 수 있다.

봉하마을 대통령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억이 서린 곳이다. 유년시절의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봉화산, 대통령 퇴임 후 고향에서 환경운동을 했던 장소들을 직접 찾아볼 수 있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고도 김해의 둘레길은 서로 연결되지 않고 흩어져 있어 안타까움이 드는 게 사실이다. 김해시청 홈페이지에서 9길을 찾으면 구체적으로 가는 방법이나 길의 특징에 대한 안내 등 세심함이 부족하다. 길을 소개만 할 뿐 탐방객 입장에서 고민해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근 부산의 아름다운 바닷길을 연결하는 갈맷길은 이런 측면에서 둘레길이 가야 할 좌표를 제시한다. 바다와 육지 길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데다 관련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전체 9개 코스와 코스별 교통편, 숙박, 맛집 등이 상세하게 소개돼 있다. 누가 봐도 여행자 편에서 만든 홈페이지임을 알 수 있다. 갈맷길은 코스마다 주파했을 때 확인 도장(스탬프)을 찍을 수 있어 여행객들의 도전 정신까지 자극한다. 힐링과 재미를 적절히 버무려 놓은 것이다. 길에서 심심찮게 참가자들이 함께하는 문화공연도 펼쳐진다. 이 길은 제주 올레길 못지않게 지역민들이 즐겨찾고 외국인 완주자가 나올 정도로 명성을 얻고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지 않던가. 한 도시의 유명 관광지를 가봤다고 그 도시를 전부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그 도시에 명품 둘레길이 있다면 수차례 방문을 통해 그 도시의 자연과 경관, 스토리텔링을 접하며 애정도 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탐방객들이 맛집이나 숙박시설을 들르며 뿌리는 돈은 지역경제를 살찌우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요즘 김해에는 새로운 길들이 등장하고 있다. 카페로 유명한 장유 율하천은 최근 3.6㎞ 생태하천과 둘레길이 완성됐다. 서낙동강 둘레길 조성 사업도 최근 착수됐다.

이참에 김해가 가진 무궁무진한 자원을 활용한 명품 둘레길이 만들어지고 국제적으로 유명한 순례길로 발전하기를 기대해 본다. 물론 김해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경남에는 아름다운 해안선이 있는 남해, 거제, 통영, 지리산이 있는 산청, 하동에도 아름다운 길이 있다. 자연을 다치게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살리면서 새로운 트렌드인 명품 길을 유지하고 다듬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사회2부 부장 fee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