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 교수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되었다가 정치권과 언론의 뭇매를 맞고 후보직을 사퇴했다. 젊은 시절의 혼인 무효소송이 법무부 장관의 치명적인 결격 사유라는 것이었다. 과거의 치기 어린 행태에 대해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겠다는 그의 진솔한 사과를 우리 사회는 용납하지 않았다. 과거에 국가인권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우리나라를 인권 선진국의 반열에 올려놓았을 정도로 역량을 갖추었던 그였기에 법무부 장관으로 손색이 없으리라 봤다. 어쨌든 40여 년 전의 도덕적 과오가 그가 살아온 총체적 삶의 수준을 송두리째 깎아내렸다.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간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신의 과오를 변명하고 합리화하는 태도보다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보다 성숙한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주로 정치권에서 사자성어처럼 회자되는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준말이란다. 내로남불은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썰렁 개그 수준의 신조어로 내포된 의미도 희화적이다. 이 말은 사회적 지탄을 받을 행태를 남이 할 때는 비판하고 자신이 행할 때는 변명하거나 합리화하는 이중적 행태를 지칭한다. 이런 허접스러운 말이 요즘 주요 언론의 사설에 등장할 정도로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시대의 유행어가 되었다. 정치권의 어느 원로가 이 말을 유행시켰지만 정작 유행시킨 자신은 성추행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능력과 도덕성은 사람을 평가하는 양대 기준이다. 능력이 물질적 욕구나 정신적 욕망의 성취와 관련된다면, 도덕성은 인격의 성숙을 의미한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전지적 능력과 완성된 인격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다. 능력과 도덕성을 겸비한 사람은 흔치 않다는 뜻이다. 애초에 신은 자신의 피조물인 인간이 완벽해지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인간은 남녀로 나뉘어 존재하면서 영원히 서로의 반쪽을 그리워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내가 하면 로맨스’는 사랑의 발로이고 ‘남이 하면 불륜’은 질투의 표현이다. 사랑과 질투의 감정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인간의 속성이다.
내로남불은 도덕성을 검증하는 기본 잣대다. 도덕성을 강조하다 보니 능력을 갖춘 사람을 찾기 어렵고, 능력에 초점을 맞추니 내로남불의 공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역대 정권에서 유능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이 내로남불의 벽을 넘지 못하고 체면만 구긴 채 공직 후보자에서 중도하차 한 사례가 적지 않다. 공수가 뒤바뀐 현 정권에서도 내로남불은 여전히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을 검증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문제는 고위 공직자에게 최소한으로 요구되는 내로남불의 용인 수준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내로남불의 도덕적 수준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인간은 자신의 욕구가 현실에서 용납될 수 없다고 느껴질 때 무의식적으로 이를 합리화(변명)하거나 남의 탓으로 돌려 자신의 자아를 보호한다. 그런 점에서 자신에게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내로남불은 인간에 내재된 기본적인 속성이다. 내로남불이 인간의 기본적 속성이라고 해서 그대로 용납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인간의 기본적 속성은 이기적이어서 즉각적인 욕구 충족을 지향하는 동물적 특성과 다를 바 없다. 성숙한 인간은 궁극적으로 욕구 충족을 지향하지만 현실의 요구에 맞게 욕구를 절제함으로써 갈등을 최소화한다. 그런 사람은 ‘남에게는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한’ 관인엄기(寬人嚴己)를 지향한다. 도덕적으로 완숙하지 못해 관인엄기가 어렵다면, 그에 상응한 진솔한 사과와 반성에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 그게 공직 후보자가 자신의 도덕성을 보여주는 최소한의 수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대개의 사람은 자신의 도덕적 과오에 대한 진솔한 사과와 반성보다는 궁색한 변명이나 자기 합리화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숀 합우드는 미국 네브래스카에서 5차례의 은행 강도를 저질러 11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복역 중 한 재소자의 부탁으로 그가 써준 상고이유서가 연방대법원에서 채택되고, 세스 왁스만 전 법무차관으로부터 법률문서작성에 관한 한 최고의 안목을 갖추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합우드는 출소 후 미국 워싱턴대학 법대에 진학해 변호사가 됐다. 일찌감치 그의 능력을 알아본 명문 조지타운대학은 최근 그를 부교수로 채용했다. 40년 전의 도덕적 과오까지 들춰내 망신시키는 사회에서는 과연 가능한 일일까?
부산대 의전원 교수·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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