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작 뉴턴(1643~1727)이 ‘행성은 만유인력의 법칙과 운동에너지 법칙에 의해 시곗바늘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항행하므로 미래 우주여행이 가능하다’라고 그의 논문에서 밝힌 지 300년, 인간이 달나라를 다녀오고 우주선이 태양계 끝을 항행하기도 하였다. 말이 문자로 그 문자는 타이프라이터로 기록되고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사전이 완성되고 컴퓨터가 개발되면서 수많은 지식이 축적되고 이를 선별하고 축약하고 정리하는 그리고 수시로 정확한 정보를 복제하고 재생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춘 인공지능이 생겨났다. 그 인공지능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인간 유전정보체를 재생하고 생명의 에너지원인 사립체를 생산해 내고 뇌신경 회로를 설계한다면 머지않아 인공지능 인간이 태어날 것이다.

원천적으로 보면 인간이 화풍지수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에 인공지능 인간은 숫자의 조합이요 수많은 그림의 답습으로 만들어진 사람 흉내를 내는 상(相)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인공지능 인간은 기존 인간과 달리 생식기능이 필요 없고 학습이 필요 없다. 숨을 쉬지 않아도 되고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된다. 물론 어떤 일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설령 일을 한다고 해도 소모되는 것이 없다. 필요에 따라 나타나기만 하는 불멸의 존재가 될 것이다. 백만 년 바위산 속에 갇혀있던 손오공이 세상으로 나오는 양상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인간 생명의 삼대 요소는 숨 쉬고 밥 먹고 일하는 것이다. 숨을 쉴 수 있는 것은 부모의 은덕이요,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사회인의 공덕이요,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지혜로운 자의 복덕이다. 거기에 내 것이라고 주장할 만한 것이 없다. 눈에 보이고 생각하고 춤을 추는 이 육신도 알고 보면 음식 덩어리다. 우주의 차원에서 빛의 속도는 초속 30만㎞. 현재 우리가 상상하거나 식별 가능한 천체도 빛의 속도로 460억 광년의 거리에 있다고 한다. 우주의 크기로 보아도 우주의 시간으로 보아도 인간은 티끌보다 작고 100년을 산다는 인간 생명의 시간 역시 촌음에 가까운 것이다. 우주에서 볼 때도 인간은 없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런데 나(我)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그 어떤 인연으로 인해 나 아닌 삼라만상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무아(無我)인 내가 존재하는 것은 삼라만상의 필요에 의해 인연 따라 나타난 것이라서 생존하는 것만큼 삼라만상의 요구에 부응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숨 쉬고 밥 먹고 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것들이 다 나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를 아상(我想)이라고 한다. 아상이란, 말 그대로 자기 생각이다. 자기가 스스로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무아를 깨우치지 못한 그 존재는 삼라만상이라는 거울 속에 비추어 보이는 그림자이자 허상이다. 소신대로 자신을 이끌어 갈 수도 없는 꿈속인데도 그 꿈속에서 자아(自我)를 만들어 자기 존재를 만든 것이다. 마치 꿈속에서 비행기를 만들어 타고 다니는 것과 같다. 꿈속에 자아는 나름대로 잣대를 설정하면서 자신의 잣대보다 높은 상대가 나타나면 아첨하거나 비굴해지기도 하고 자신의 잣대보다 낮은 상대가 나타나면 업신여기거나 무시하기도 한다. 서유기에 나오는 요괴가 바로 이러한 아상이 강한 자들이다. 망상(妄想)일 수밖에 없는 아상은 개개인이 다 다른 꿈을 꾸듯이 그 기준이 다 달라 다툼이나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두렵고 무섭고 부끄럽고 거짓말하고 도둑질하고 술 먹고 방탕하고 그 망상의 정도에 따라 가지각색의 요괴가 되는 것이다.

곧 다가올 인공지능 인간 시대에 인간이 무아의 경지에서 산다면 인공지능 인간은 인생 삶을 풍요롭게 하는 협시보살이 될 수 있지만, 아상이 가득한 세상에선 자신의 달콤한 꿈을 깨뜨리고 무지를 들추어내는 무서운 손오공이 될 것이다.

양산부산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