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됐던 증세론이 마침내 수면 위로 부상했다. 문재인 정부가 엊그제 국민들에게 보고한 100대 국정과제의 후속편이다. 보고 당시에는 증세 없이 이들 과제를 실행하겠다고 밝혔지만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없었다. 하루 만에 이를 뒤집는 증세 얘기가 나온 건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문제 제기의 주체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이란 것만 다를 뿐이다. 국정과제를 작성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대신 두 사람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를 자처한 셈이다.

국정자문위가 100대 과제 추진에 필요한 178조 원을 82조6000억 원의 세입 확충과 95조4000억 원의 세출 절감으로 조달하겠다고 했지만, 이 계획은 추 대표와 김 장관의 반론을 염두에 둔 증세 논의의 모두발언이나 다름없다. 경기 변동과 경제상황 변화에 민감한 세입을 이만큼 늘린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며, 기존 정부 사업을 대폭 축소하거나 폐지하지 않는 한 이 정도의 세출 절감 또한 어렵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증세 없는 복지를 내세웠다가 실패한 데서 그 허구성이 이미 드러난 바 있지 않은가.

그래서 증세는 불가피하다. 특히 ‘부자 증세’를 도모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처럼 담뱃값을 올려 서민의 지갑을 털어가는 ‘꼼수 증세’를 해선 안 된다. “소득 2000억 원을 초과하는 대기업의 법인세율을 현행 22%에서 25%로, 5억 원 넘는 고소득자의 소득세율을 40%에서 42%로 각각 올려 중소 자영업자의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재정 지원이나 소득 주도 성장의 기반을 마련하자”는 추 대표의 제안은 고려해볼 만하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등 야당들도 부자 증세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우리나라의 국민총생산 대비 조세부담률은 18.5%(2015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25.1%)보다 낮아 증세 여력도 있는 편이다.

지난 3월 말 현재 국내 자산 상위 30대 그룹의 사내 유보금은 691조5000억 원에 달했다. 축적된 부의 혜택이 투자와 고용 등을 통해 사회 전체에 미치는 ‘낙수효과’를 바라고 대기업에 세제 지원을 해왔건만 기대는 실망으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부자 증세를 통해 소득 재분배와 양극화 완화를 꾀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