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 기간에 우리 국민의 가장 많은 관심을 끈 비정치적 뉴스는,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음악가 윤이상 선생의 묘소에 통영에서 직접 공수한 동백나무를 심은 일일 것이다. 동백나무 표지석에 새겨진 ‘대한민국 통영시의 동백나무 2017. 7. 5. 대통령 문재인 김정숙’이라는 글귀를 읽으며, 우리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작곡가 30인’에 꼽힌 윤이상 선생과 동백림사건, 통영의 동백나무를 동시에 떠올리게 된다. 김정숙 여사는 “선생의 마음도 풀리길 바란다. 통영의 나무가 잘 자랐으면 좋겠다. 꼭 기억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2007년 윤이상 선생 탄생 90주년 행사 때 귀국했던 부인 이수자 여사를 통해 선생의 아픔과 바람을 절절히 알게 된 필자에게는 남다른 감회가 아닐 수 없다.

윤이상 선생은 1917년 9월 17일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세 살 되던 해에 통영으로 이사하여, 한려수도의 섬과 바다가 연주하는 아름다운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루이제 린저와의 대담에서 그는 아버지와 밤낚시하던 바다를 떠올렸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잠자코 배 위에 앉아 물고기가 헤엄치는 소리나 다른 어부들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바다는 공명판 같았고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다.” 통영은 윤이상 선생에게 음악 그 자체였다. 매우 어렵다고 하는 그의 음악에는 바로 어릴 적부터 보고 들은 대자연의 울림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17세 때 2년간 서울에 유학한 이후, 일본에서 악기와 작곡을 공부했다. 유학 생활 동안 일제의 민족차별을 느낀 그는 귀국 후 교사가 되어 일제의 눈을 피해 어린이들에게 한글 노래를 가르치기도 했으며, 항일운동 지하조직에 가담했다가 ‘조선가곡 작곡자’란 죄로 체포되어 고문을 받기도 했다. 1956년 유럽으로 가서 작곡 공부를 했으며, 1966년 독일의 도나우싱엔 현대음악제에 동서양의 음악이 결합된 대편성관현악곡 ‘예악’을 발표하면서 세계무대에 명성을 알렸다. 1967년 한창 음악에 몰입되어 있던 그의 운명을 가르게 되는 ‘동백림사건’으로 2년간 옥고를 치렀다. 1972년 뮌헨올림픽의 축전 오페라인 ‘심청’을, 1980년에는 ‘광주는 영원히’를 작곡했으며, 1990년 분단 45년 만에 평양에서 ‘범민족통일음악회’를 열었다. 윤이상 선생은 베를린 자택에 한반도 모양의 연못을 만들어 조국을 그리워했다. 1995년 11월 3일 “이제 내 고향은 남한도 북한도 아닌 독일”이라는 한 많은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윤이상 선생의 삶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역사적 교훈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픔의 치유와 포용, 그리고 상생이라고 본다. 첫째 윤이상 선생은 남북 분단이 만들어낸 민족적 비극의 전형이다. 어디 윤이상 선생뿐이던가. 외세의 침입과 일제강점기, 전쟁 등으로 예술인들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많은 고초를 겪었으며, 그 후유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제 윤이상 선생 사건을 국민적 화합을 위한 계기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국민적 화합을 위해서는 윤이상 선생의 음악적·정치적 행로와 위상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윤이상 선생은 세계적인 음악가일 뿐만 아니라, 많은 학교의 교가를 작곡하였고, 항일운동으로 고문을 받기도 한 반면에, 동백림사건과 북한에서 음악회를 열어 환대를 받기도 했다. 윤이상 탄생 100주년인 이 시점에 선생을 재조명하여 서로 이해와 용서를 구함으로써 민족적 아픔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국민적 합의가 된다면, 그렇게 오고 싶어 하던 조국 통영에 유해를 모셔 와야 한다. 유해를 모셔오는 것은 윤이상 선생의 유족들도 강력히 의사를 표하고 있다. 통영시가 나서서 베를린시와 긴밀히 협의하고, 중앙정부가 지원하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베를린시에 한국과 독일의 고유 수종을 함께 심어 가칭 ‘윤이상 음악을 통한 치유와 상생의 숲’을 조성하는 것은 어떨까? 과거 시대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에도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 통영국제음악당 건립, 선생의 기념관 및 공원 조성, 음악창의도시 선정 등 윤이상 선생을 모토로 한 많은 사업을 기획했던 통영시라면 충분히 추진할 수 있으리라 본다.

2017년은 윤이상 선생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로 다양한 행사가 통영을 중심으로 국내외에서 진행되고 있다. “자유의 몸으로 내 나라를 다시 보고 싶다”던 선생의 말씀이 퍼지는 기념관에 다시 가봐야겠다. 반짝이는 동백 잎사귀에 어려 있을 ‘시대의 그림자’ 윤이상 선생의 넋을 위로하고 싶다.

경상대 해양식품생명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