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연민의 추억 /정인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17-07-14 19:37:22
| 본지 19면

'쫑'은 내가 주말이면 가는 시골집의 앞집 할머니가 키우던 개다. 할머니 혼자 계시는 걸 염려한 따님이 구포시장에서 사다 주었다. 젖을 갓 뗀 강아지로 할머니에게 온 쫑은 온종일 묶여 있었지만, 사람을 보면 그저 좋다고 꼬리를 흔들 뿐 짖을 줄을 몰랐다. 순박하고 귀여운 모습에 눈치도 빠르고 영리했다.

쫑은 남루한 잠자리에 맨밥만 먹고도 무럭무럭 잘 자랐다. 할머니는 쫑을 함부로 풀어놓지 않았다. 골목에 돌아다니는 수컷들과 정분이 날까 봐 불안해서였다. 여든다섯의 기력이 쇠하신 할머니로서는 쫑의 새끼를 받아 분양하기까지의 과정을 생각만 해도 삭신이 쑤시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쫑이 덜컥 새끼를 배고 말았다. 이웃 수컷이 원정을 온 탓이었다.

두어 달 후, 쫑은 새끼 네 마리를 가진 어미가 되었다. 쫑은 그때부터 할머니와 우리 집 사이에 터놓은 담장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었다. 자유로운 몸으로 새끼에게 젖을 잘 먹이라고 할머니가 목줄을 풀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쫑과 나는 일이 주에 한 번씩 만났다. 쫑은 차 소리가 들리면 버선발로 뛰어오듯 달려와 온몸으로 나를 반겼다. 아무리 급하게 달려와도 내가 가꾸는 꽃밭은 밟지 않았다. 내가 떠날 때도 꼭 나와서 배웅했다.

쫑은 내가 있을 때면 하루에도 몇 번씩 담을 넘나들었다. 시시때때로 젖을 빨아대는 새끼들의 등쌀에서 좀 벗어나고 싶을 때, 새끼에게 양분을 다 빼앗기고 속이 허하여 무언가 좀 먹고 싶을 때, 혹은 새끼들이 싸놓은 오물을 치우지 않아 쉴 자리가 없을 때였다. 그렇게 우리 집에 온 쫑은 대개 테라스에 드러누워 늘어지게 잠을 잤다. 그래도 쫑의 두 귀는 항상 새끼들을 향해 열려 있었다. 시신처럼 자다가도 느닷없이 일어나 쏜살같이 달려가곤 했다.

그 뒤를 따라가 보면 쫑은 서로 뒤엉켜 꼼지락거리는 새끼들을 일일이 핥아주고, 가슴을 들이대어 젖을 먹이고, 덜 축축한 구석을 찾아 새끼들을 옮겨주고는 했다. 새끼를 보살피는 쫑의 모습은 어미로서 참으로 지극한 데가 있었다. 쫑을 보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이 시대 잔인한 엄마들이 생각나곤 했다.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쫑의 몰골은 전 같지 않았다. 털은 푸석푸석하고 몸은 가여울 정도로 여위어갔다. 먹을 걸 주면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두어 달이 지났다. 새끼들은 어미와 장난을 칠 정도로 자랐다.

어느 날 쫑은 자랑하려는 듯 내 앞에 새끼 네 마리를 이끌고 나타났다. 처음 외출에 나선 새끼들은 꽃밭을 색다른 놀이터로 생각했는지 마구 뒹굴었다. 꽃들이 주저앉았다. 쫑아!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쫑은 단번에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렸다. 삽시간에 새끼들을 휘몰더니 제집으로 내달렸다. 새끼들은 영문도 모른 채 고꾸라져가며 죽어라고 어미를 따라 뛰어갔다. 그 후 쫑은 새끼들을 데리고는 오는 법이 없었다. 쫑은 마치 철 든 아이 같았다. 교감 능력이 그렇게 뛰어날 수가 없었다. 할머니의 반려견으로 아주 훌륭했다. 그런데 쫑은 새끼를 가짐으로써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 말았다. 쫑이 또 새끼를 낳았을 때 할 치다꺼리가 염려스러웠던 할머니가 쫑을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어느 이른 새벽 나는 마당을 거닐다가 쫑의 갑작스러운 외침을 들었다. 거의 절규였다. 새끼를 떠나보낼 때의 울음소리와는 또 달랐다. 나, 싫어! 정말 싫어! 나도 살고 싶어! 내 귀에 분명히 그렇게 들렸다. 그럼에도 쫑은 할머니가 '쫌 조용히 해라'는 말에 금세 조용해졌다. 쫑은 마지막까지 충직했다.

나는 불길한 예감에 가슴이 떨렸다. 뒤늦게 할머니의 마음을 알고 대책을 생각하던 중이었다. 황급히 옷을 갈아입고 나갔지만, 쫑은 이미 개장수의 트럭에 실려 간 후였다.

세상에 태어나 일 년 남짓 살았던 쫑은 그렇게 떠나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쫑이 어딘가에서 잘 살리라는 바람을 가질 수가 없었다. 아직 젖이 출렁거리는 쫑이 개장수에게 팔려 갔다면 그 말로가 뻔했다. 복날이 얼마 남지 않은 탓이었다.

해마다 복날이면 200만 마리 이상의 개가 죽임을 당한다. 개 식용문화는 중국 인도 베트남 등 일부 아시아 국가에도 있다. 그렇다고 우리처럼 농장에서 대량 사육해서 통용하지는 않는다. 지난 9일 서울에선 개 식용을 반대하는 'STOP IT 2017' 행사가 열렸다. 세계 각국에서 우리나라의 개 식용문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개 식용자들은 개가 소, 돼지와 다를 게 뭐 있느냐고 항변한다. 하지만 개는 뛰어난 교감 능력이 있다. 정서적으로 소통이 잘된다. '반려'라는 자격을 갖게 된 이유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세상의 모든 생명을 이용할 힘을 가졌다. 그렇다고 그 힘을 마구 휘두를 수는 없다. 개 식용은 오직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쫑'처럼 충직하게 살다 간, 그 죄 없는 생명의 비참한 최후에 조금이나마 연민을 가진다면 철창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는 개들도 결국 사라지련만. 쫑의 마지막 절규가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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