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 정치판을 보고 있으면 한때 야구계를 풍미했던 명언이 떠오른다. 지난해 세상을 등진 야구해설가 하일성(1949년 2월 18일~2016년 9월 8일)의 단골 코멘트다. "야구, 아무도 몰라요."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해설자로 명성을 날린 하일성의 구수한 입담을 아직도 기억하는 팬이 많다. 그의 프로야구 경기 흐름을 읽는 법은 간단하고 명쾌했다. 경기 중 어느 한 팀이 이기고 있어도 "야구, 아무도 몰라요"라고 한마디 툭 던지면 시청자들이나 청취자들은 귀가 솔깃했다. 실제 큰 점수 차로 지고 있는 팀이라도 뒷심을 발휘해 역전에 성공하는 일이 잦았다. 야구는 9회 말 스리 아웃까지 가봐야 자웅을 겨룬 두 팀의 승패가 판가름 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9번씩 수비하고 공격하는 과정에서 역전을 거듭하는 게 야구의 묘미다. 팬들의 흥미도 배가 되고, 다음 경기를 기다리는 즐거움도 있다.

"정치, 아무도 몰라요." 정치판의 흐름을 읽고 미래를 진단하는 정치평론가나 각 방송국 해설위원들은 이 말을 한 번쯤 던져보면 어떨까.

지금 종편 등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전직 국회의원을 비롯해 정치권에 몸담았던 정치 해설위원들은 갖가지 포장된 말로 정국을 전달하기 바쁘다. 여야 역학관계가 어떻고,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해 곧 정국 정상화에 진입할 것이라는 등 그 나름대로 배경지식을 총동원해 현 시국을 분석한다. 그런데 듣는 사람 대부분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기 일쑤다. 콕 집어 정치판이 어떻다는 것인지 알쏭달쏭하다. 방송 시간을 채우기 위해 말의 성찬을 차렸지만, 속 시원한 진단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사실 그들 해설위원도 잘 모르는 판이 정치가 아닐까. 그렇다면 해설하는 중간중간 "정치, 아무도 몰라요"를 지나가는 말로 해보자. 다소 품격이 있어 보이는 정치해설이 될 수도 있다. 듣기에 따라서는 간단하고 명쾌한 정치판 진단이 아닐까 싶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 정치권은 적어도 9번씩의 공격과 수비를 할 기회가 있다고 보면 되겠다. 지금은 수비 중인 여권이 큰 점수를 덤으로 얻고 경기를 시작하는 형국이다. 공격에 나선 야권은 중심타선의 방망이마저 식은지라 관중석의 분위기도 싸늘하다. 이래저래 재미없는 경기 초반이다. 파이팅이 떨어진 야권의 고민은 깊어가고, 수비가 손쉬운 여권은 힘이 오른다.

부산 정치권만 봐도 그렇다. 누구도 지금과 같은 판세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 정확한 진단이다. 알 만한 사람은 다 파악하고 있겠지만, 현 여권은 바로 직전의 야권 시절은 물론 김대중·노무현 정권 당시 10년간 지냈던 여당 시절에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행복감을 누리고 있다. 오랜 시절 지역 정치권에서 먹었던 눈칫밥은 온데간데없고, 따뜻한 밥상 주위로 몰려드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부산이 낳은 대통령의 지지율도 높아 금상첨화다.

옛 '새누리당계'를 대표하는 야권 인사들은 부질없는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그 많던 지역 유권자의 지지율은 급전직하했다. 이제는 좀 잠잠해졌지만, 위기의식과 초초감을 느낀 일부 인사의 이탈이 또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 당은 쪼개졌고, 그나마 기댈 언덕조차 사라진 느낌이다. 오랜 기간 걱정도 하지 않았던 부산시장 자리가 위태로워 보이고, 기초자치단체장 자리에도 허명의 깃발만 나부낄까 봐 두렵다.

여야 정치권의 명암이 엇갈리는 판세는 올해 연말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관중석은 보고 있다. 야구 경기로 치자면 중반전까지 여야 간 점수 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을 전망이다. 경기 내용도 여권 측이 훨씬 알차게 진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여권이든 야권이든 경기 결과를 놓고 끝까지 안심하거나, 실망하지는 않는다. 해가 바뀌면 시작될 종반전 경기 내용은 지금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탓이다.

분위기가 고조된 여권의 헛방망이질이 몇 번 이어진다면 야권의 반격은 금세 시작될지도 모른다. 현재 잔뜩 움크린 모양새의 야권은 그래도 이 바닥에서는 백전노장의 뚝심이 있다. 야구에서 종반전에 상대의 허를 찌르는 작전이나 기대하지 않았던 대타의 힘찬 방망이질이 경기 흐름을 일시에 바꿔놓듯이 정치권 판세도 한순간에 달라지는 여건이 수시로 생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작전이 어디선가 날아오기 마련이다.

내용 면에서 이기고도 결과에 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 경기를 잘했다고 자평해도 소용없다. 야구에서 큰 점수 차로 지고 있다가도 딱 한 점만 앞서면 승리하지 않는가. 승자독식의 선거에서 유권자의 표심을 단 몇 표만 더 얻으면 상황은 그것으로 끝난다. 여권이든 야권이든 최선을 다해 내년 지방선거에 임해야 할 것이다. 부디 기고만장하거나, 지리멸렬하는 모양새를 경계할지어다. 결과는 유권자가 결정한다. 당장 내일이라도 어떤 변수가 불거져 정치판을 요동치게 할지 아무도 모른다.

편집국 부국장 겸 뉴미디어본부장 choonjin@kookje.co.kr